
세계인 6명 가운데 1명은 암으로 죽는다. 수많은 항암제가 개발됐지만 암도 변이와 내성 등으로 진화하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항암제 트렌드는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 세포를 공격하는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 치료제와 항암제 2~3개를 함께 투여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병용요법이 대세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에 주목하는 이유와 개발 현황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주]
암세포는 한 가지 공격만 하면 약물 효과가 감소하는 내성이 생길 수 있다. 때로는 정상세포로 위장해 항암제의 공격을 피하기도 한다.
이에 최근 항암제 개발 트렌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제 2~3개를 같이 사용하는 병용요법이 대세다. 근접 공격에 능한 돌격병과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저격병이 뭉쳐 공격력을 배가시키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제품명 렉라자)을 들 수 있는데 월등한 항암 효과로 지난해 미국에 이어 지난 1월 유럽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유한양행은 레이저티닙을 존슨앤드존슨(J&J)에 기술수출했는데 연간 로열티 수익만 100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매출 1위 '키트루다'+자체 물질, 병용요법 개발 활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자체 신약후보 물질을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으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한양행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건 HLB의 '리보세라닙'이다. 리보세라닙은 중국 항서제약의 항암제 '캄렐리주맙'과 병용요법 임상3상을 마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HLB는 FDA로부터 지난 3월 승인 보류 통보를 받고 지적사항인 캄렐리주맙의 제조시설 보완 문제를 해결 중이며 추후 품목허가를 재신청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손자회사인 미국 항암신약 개발사 아베오파마슈티컬를 통해 두경부암 신약 후보물질 '파이클라투주맙'과 머크가 20여년 전 출시한 '얼비툭스'의 병용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회사는 임상3상을 마치고 오는 2028년 미국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가장 많이 병용요법에 도전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의 대상 항암제는 '키트루다'다. 키트루다는 적응증(사용 가능 질환)이 30개에 달해 개발 가능한 범위의 폭이 넓다. 또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으로 병용투여 개발에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한미약품, 지아이이노베이션, CJ바이오사이언스, 압타바이오, 티움바이오, 제넥신, 큐리언트 등 다수 국내 기업들이 자체 신약 물질과 키트루다의 병용요법을 개발 중이다. 이 중 한미약품은 3개 신약 파이프라인과 키트루다의 병용요법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 키트루다 개발사인 MSD(미국 머크)와 협력하고 있다.
에이비온은 미국에서 자사 항암 신약 후보물질인 '바바메킵'과 유한양행 '레이저티닙'의 병용요법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고 네오이뮨텍은 NT-I7을 3대 CAR-T 치료제 킴리아, 예스카타, 브레얀지 중 가장 효과적인 병용 파트너를 찾기 위해 임상1상과 2상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밖에 메드팩토는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한 '임핀지'와 백토서팁, 일동제약의 신약 개발 자회사인 아이디언스는 화이자의 대장암 치료제 '이리노테칸(제품명 캠프토사)' 성분과 베나다파립의 병용요법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고 있다.
3제 병용요법도 '활발'…부작용 최소화가 개발 성공 '핵심'
3개 의약품을 더한 3제 병용요법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한미약품이 미국 앱토즈에 기술이전한 투스페티닙은 백혈병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베네토클락스, 저메틸화제와 3제 병용요법으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올 하반기 이들 3제 요법에 대한 임상 1, 2상(1상과 2상 동시 진행) 중간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제넥신은 GX-188E와 GX-17 2개 자체 신약 물질을 묶어 키트루다와 옵디보에 대한 3제 병용요법으로 임상 2상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큐리언트는 고강도 화학치료를 받기 어려운 혈액암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는 '아자시티딘+베네토클락스'에 Q702(성분명 아드릭세티닙)을 추가한 삼중 병용요법을 개발 중이다.
혁신적인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개발된 신약 보다 더 효과적인 치료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많은 혁신적인 항암 신약을 개발했고 국내 기업들이 이를 뛰어넘는 신약을 개발할 여력은 부족하다. '병용요법'은 기존 항암 신약이 보유하고 있는 임상 데이터들이 있는 만큼 개발에 성공할 확률도 더 높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병용요법은 기존 항암제의 가장 큰 단점인 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단독으로는 효과가 미비하더라도 기존 항암 신약과 병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서 "다만 높은 치료효과 만큼이나 부작용 위험도 더 클 수 있어 각 약물의 최적 용량으로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