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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특례로 주식 시장에 상장한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본업인 바이오와 거리가 먼 베이커리나 정보통신(IT) 서비스, 화장품 등 엉뚱한(?) 업종의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이 만료됐거나 만료를 앞둔 기업일수록 이종 사업에 역량을 쏟는 모습이다. 신약 개발 특성상 수많은 시간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기술특례 상장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매출 요건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특례상장은 일정한 매출 실적이 없어도 핵심 역량과 혁신성을 인정받으면 주식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다. 단기 매출원이 없는 신약 개발 기업들의 주요 상장 통로였다. 하지만 상장 5년 후 매출 30억원 이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베이커리·IT 사업 붙여 매출 요건 맞춰
21일 업계에 따르면 세포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인 셀리드는 지난 2019년 기술특례로 상장해 2023년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이 만료됐다. 회사는 매출을 내기 위해 2022년부터 자사의 강점인 세포 유전자 치료제와 바이러스 벡터(유전물질을 세포에 주입하기 위한 바이러스 운반체) 위탁개발생산(CMO)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연매출 규모는 5억원 수준으로 30억원의 매출 달성엔 턱없이 부족했다.
벼랑 끝에 몰린 셀리드는 지난해 5월 베이커리 개발·판매사인 포베이커를 흡수합병하면서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셀리드는 포베이커 인수를 통해 작년 3분기 상품매출(포베이커) 18억원, CMO 매출 5억원으로 총 2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4분기 매출까지 더하면 작년 연간 매출 3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포베이커는 2023년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였고 셀리드 역시 122억원의 영업손실과 116억원의 순손실을 낸 만큼 수익성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압타바이오도 2019년 상장해 지난해 매출 30억원 이상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압타바이오는 지난해 7월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업체인 에프엠더블유 지분을 취득하면서 2023년 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이듬해에는 단숨에 34억원으로 급증했다. 매출액 특례 요건을 충족한 것이다.
2018년에 상장한 유틸렉스는 지난해 5월 IT서비스 기업 아이앤시스템을 흡수합병했다. 2023년도 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에 95억원으로 확대되면서 관리종목 지정 요건을 해소했다.
관리종목 안되려 화장품·의약품 유통 사업도
이외에도 별의별 사례가 있다. 바이오 신약 개발회사인 티움바이오는 바이오의약품 공정개발(CDO) 및 단백질 분석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티움사이언스를 설립했다. 티움바이오의 지난해 매출은 68억원으로 대부분이 프로티움사이언스를 통해 발생했지만 경쟁사에 밀려 수주가 끊길 경우 매출이 대폭 감소할 우려가 있었다.
티움바이오는 안정적인 매출 확보를 위해 작년 12월 천연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인 페트라온과 합병했다. 페트라온의 2023년도 매출이 44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합병으로 인한 연결 실적이 반영되는 티움바이오의 올해 매출은 1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박셀바이오는 지난해 12월 병원과 약국 등에 의약품을 유통 및 판매하는 의약품 유통업체 에스에이치팜을 인수하면서 매출 요건을 갖췄다. 2016년 상장한 큐리언트도 2021년 의약품 유통업체 '에이치팜 주식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매출 30억원을 넘긴 바 있다.
올리패스·파멥신 인수 시점 늦어 30억 매출 달성 '미지수'
다른 업종 기업 인수가 늦어져 매출 요건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이는 곳도 있다. 2019년 코스닥에 상장한 바이오 신약 개발사인 올리패스를 꼽을 수 있다. 올리패스의 주요 매출원은 기술이전 및 공동연구 기술료(연구매출)와 자회사 올리패스알엔에이의 화장품 사업이었다.
올리패스알엔에이는 2020년 27억원의 매출을 내기도 했지만 허위광고에 따른 화장품법 위반으로 2023년 행정처분을 받으면서 올리패스알엔에이 지분을 모두 처분, 화장품 사업을 접었다.
올리패스는 새로운 매출원으로 지난해 5월 617억원을 들여 수원센트럴파크자이 민간임대아파트 241세대를 인수, 부동산 임대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수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인수 일정이 수차례 지연됐고 지난달에도 내달 31일자로 또 연기됐다. 결국 작년 매출액은 20억원에 그쳤다.
올리패스는 최근 3년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비중이 자본 대비 50%를 넘으며 지난해 관리종목에 지정된 바 있다. 여기에 매출 요건 달성까지 실패하면서 관리종목 지정이 추가되면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파멥신도 지난해 매출 30억원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3분기 매출액이 3억원 미만으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추가로 발생했다. 파멥신은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 작년 10월말 '좋은타이어'를 흡수합병했지만 좋은타이어의 2023년도 매출은 64억원 수준으로, 두달여간 매출이 반영된다고 해도 매출 30억원을 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밖에 2019년 상장한 지노믹트리는 작년 매출 24억원으로 매출 30억원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매출액 요건 면제 기준인 시가총액 4000억원 이상이어서 관리종목 지정 대상을 면하게 됐다.
다수 바이오 기업들이 다양한 기업 인수를 통해 매출 30억원 이상을 맞추면서 관리종목 지정을 피했지만 본업인 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먼 업종이 대부분이어서 부정적인 시각도 뒤따르고 있다.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바이오기업들이 특례상장 매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수십에서 수백억원의 자금을 들여 엉뚱한 기업을 인수하고 있는데 신약 개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본업에서 매출을 전혀 또는 거의 내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인 만큼 인수자금은 결국 유상증자, 전환사채 발행 등 주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