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문제는 이월시킬 수 있는 이슈다. 국고가 조금 모자라더라도 당장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고소득층의 탈루소득을 찾아내 벌충하겠다는 계획은 원론적이고 상식적이다. 과거의 경험과 실적은 좋지 않지만, 일단 지켜보면 된다. 정히 안되면 다음 정권으로 짐을 넘겨도 된다. 퇴임 후에 욕은 조금 먹겠지만, 책임은 새 집권자의 몫이다.
그래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민의 주거와 관련된 이슈는 우리에겐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다. 원론적으론 '주택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대원칙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 과거 부동산 정책의 교훈이다. 그만큼 오래 누적된 문제다. 그래서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항상 골칫거리는 시간 차이 문제다. 수요와 공급을 늘리거나 줄이고자 해도 실제 결과가 나오는 시점은 빨라야 2~3년 뒤다. 그 사이 심리적으로 일부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실제 결과물이 나왔을 때는 종종 반대의 상황이 돼 있곤 했다. 정책 입안자들은 다시 두들겨 맞고 정책의 방향은 뒤틀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어쨌든 그 시간적 갭을 메워줬던 것이 금융 부문이다. 금융을 통한 정책 툴은 대체로 자금을 직접 공급하거나 조이는 것이어서 그 효과도 표피적이고 직접적일 때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2~3년을 끌고 수요·공급 계획의 결과물이 나올 때쯤이면 금융부문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 풀리거나 조인 자금은 보통 금융권에 부메랑이 됐다.
왜일까? 부동산 시장이 이미 반대의 상황이 돼 있곤 했기 때문이다. 돈은 혈관을 따라 물 흐르듯 흘려야 한다고 보통 말한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틀면 그에 따른 수업료는 꼭 내게 돼 있는 것이 금융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까? 아니다. 정확히 알고 있다. 금융인들이 모르는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그 수업료를 각오하는 것이다.
수업료를 각오했다면 그만한 돈 가치를 했다는 것을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불만이 없다. 그런데 항상 그 돈은 어딘지 모르게 허공에 날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고스란히 은행의 부실이 된 경우가 많다. 세금을 허투루 쓰면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금융산업엔 비상시국으로 비유되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의 역할, 즉 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은행의 돈을 당국자 맘대로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금융회사 대주주가 일정 비율을 넘겨 대출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선량한 고객의 돈이기 때문이다. 당국자들이 이를 모른다면, 저축은행 사주들이 금고의 돈에 손을 대는 그런 행태를 욕하고 징계할 할 자격도 없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0일 은행들이 전·월세 대출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좋은 취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불만도 표시했다. 여기서 '좋은 취지'는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에 붕괴 조짐이 있는 비상시국도 아닌데, 선량한 국민이 맡긴 쌈짓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부실이 나건 말건 퍼주라는 말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듣고 싶다.
정부는 오는 28일 이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금융부문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나올 대책에서 금융부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앞서 최 원장의 주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이 '좋은 취지'의 정책이 의도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건설·부동산 부문 공무원들은 그 욕 먹어가면서도 건설업 살리겠다고 난리다. 언제쯤 금융 공무원들로부터는 그런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으려나…. 참, '나쁜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