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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이 가야할 길(속편)

  • 2013.12.12(목) 10:41

박근혜정부가 대표적인 서민공약인 행복주택의 궤도를 수정했다. 주민들의 반발에 가구 수를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이다. 우선 전체 공급물량이 20만 가구에서 14만 가구로 30% 줄어든다. 시범지구부터 물량을 축소한다. 7개 지구 1만50가구에서 5230가구로 절반 정도 줄인다.


입지도 철도부지, 유수지 등 공공용지만을 고집하지 않고 뉴타운 해제지역 등 도시재생용지와 공기업(LH, SH) 보유토지 등으로 확대한다. 행복주택을 입안할 때부터 안고 있었던 문제를 털고 가겠다는 것이다.


사실 철길 위에 짓는 행복주택은 땅값 공짜라는 환상에 빠져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으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달랐다. 인공 데크를 설치해야 하는 등 추가 건축비가 웬만한 지역 땅값보다 더 들고, 많은 돈을 들여 짓더라도 진동과 소음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건교부 고위직을 지낸 전직 관료는 “우리처럼 층간소음에 민감한 나라에서 철길 위에 집을 짓겠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라며 “대선 공약은 실행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디테일하게 따져보지 않고 세우기 때문에 항상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철길과 유수지에 짓기 때문에 인근 지역 주민과 갈등이 생길 여지가 적을 것으로 판단한 것도 오류였다. 과거 정부가 그랬듯이 입지 확보에만 매달렸지 커뮤니티(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을 고려치 않은 것이다. 그동안 택지를 수용해 주택을 짓는 방식에 젖어 있었던 탓도 크다.

 

이제라도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자체 수정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보금자리주택의 문제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던 MB정부보다 후한 점수를 받을만하다.


그렇다고 행복주택이 아무 문제없이 씽씽 달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갈등의 크기만 줄였을 뿐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범지구 주변 주민들은 여전히 가구 수 축소가 아니라 입지 재선정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사업 부지를 선정할 때는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최우선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사업으로 일을 끌어가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입지를 도심으로 한정지을 필요도 없다. 보금자리지구나 택지지구를 활용하는 방안과 대학 기숙사를 학교와 공동으로 짓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목표 달성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정부 내에 목표 가구 수를 채우기 위해 불도저식으로 추진해서는 ‘불행’주택의 대명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행복주택이 가야할 길 (본편, 2013년 7월10일)

박근혜정부의 국책사업인 행복주택이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월 20일 서울 목동지구 등 7곳(1만50가구)을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발표했다. 목동지구(2800가구) 잠실지구(1800가구) 송파지구(1600가구) 오류지구(1500가구) 가좌지구(650가구) 공릉지구(200가구) 고잔지구(1500가구) 등 대부분 요지로 꼽히는 곳이다.

 

당시만 해도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신혼부부, 대학생, 저소득층을 위해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명분의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행복주택이 들어서는 철도부지와 유수지는 노는 땅이어서 수용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장점도 있다. 서 장관은 이런 기세를 몰아 6월 중순에는 행복주택 SNS 간담회도 가졌다. 정부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네티즌 여러분은 ‘좋아요’를 많이 눌러달라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주민과 지자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그냥 해보는 반대가 아니다. 목숨 걸고 막겠다는 입장이다. 목동지구가 있는 양천구 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2만명의 반대 서명을 받아 국토부와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렇게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곳이 7곳 중 6곳이다. 서대문구 가좌지구만 잠잠하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교통 혼잡 ▲학급 과밀화 ▲홍수 피해 우려 ▲임대주택 공급과잉 등이다. 물론 속내는 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 겉만 보면 대표적인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님비로만 몰아가면 일은 풀리지 않는다. 주민들의 합리적인 주장은 반영하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야 한다. 정부는 일방통행식 일처리로 화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부는 시범지구를 지정하기 전에 주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토지를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서민들의 주거복지를 위해 임대주택을 짓는 일인데 굳이 주민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결국 이런 생각이 일을 그르쳤다. 목적이 선의라도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 터진 뒤의 대처 방식도 아마추어 수준이다. 국토부는 “주민들이 사업 내용을 몰라서 반대한다”고만 탓할 뿐 뒷짐만 지고 있다. 서 장관이 직접 나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주택이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하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내에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매년 5만 가구씩 공급해야 하는 막대한 물량이다. 하지만 시범지구 1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20만 가구는 언감생심이다. 목표 물량의 절반이라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구 선정 방식과 절차 등 업무추진 프로세스를 시급히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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