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야? 뭘 하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과장부터 부장까지 한 마디씩 한다.
“집사람은 뭐하고? 요즘 문제 있어?”
“제수씨, 그렇게 안 봤는데...좀 심하네. 이거, 사회생활 그만 하라는 건데...가서 마음 좀 돌려 봐.”
남자들의 반응이야 각오했지만 여자들까지 애매한 입장을 보인다.
“ 대리님, 염려스러워서 말씀 드리는 건데요, 별로 좋은 결정이 아닌 것 같으세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 박대리, 나도 회사 다니면서 애 키웠어. 좀 참으라고 달래. 인사고과 생각도 해야지.”
또순이로 소문 난 양과장까지 말렸다. 승진에서 밀릴까 봐 출산 휴가도 쓰다 말고 회사로 돌아 온 양과장에게 남자의 육아휴직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육아휴직.
결심도 쉽지 않았지만 몸으로 옮기는 건 더 어려웠다. 신청을 하기도 전에 박대리는 전사적으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생각 없는 녀석’이 되어버렸다.인사고과는 물론이고 동료들의 염려 섞인 충고가 끊이질 않았다. 술자리의 뒷담화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대리는 씩씩하게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후회롭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속상해. 정말. 흑흑...다 알겠는데...너무 너무 힘들어.”
첫 아이가 백일을 조금 넘겼을 때 였다. 회식때문에 자정을 넘기고 들어 온 박대리는 아이를 안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콧물에, 눈물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발갛게 올랐던 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날 밤,아내는 서너 시간 울더니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주었지만 아내의 산후 우울증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은행으로 복귀하면서 아내는 웃음을 찾았었다.
“우리,둘째 낳을 수 있을까?”
아내는 둘째의 임신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불안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번엔 힘들게 하지 않을게. 지치거나 외롭지 않을 거야, 같이 해 줄게.”
아내는 그 말을 그냥 지나가는 위로로 들었던 모양이었다.육아휴직을 신청하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펄쩍 뛰었던 것도 아내였다.
“무슨 얘기야?그러지마, 회사에 눈치 보이게. 당신 승진대상이야. 애들 둘 키워야 하는데, 회사에서 밀리면 안 돼.”
박대리는 언성을 높이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육아가 부모의 공동책임인 건 지켜지지 않는 상식 일 뿐,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가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이 참에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 큰 애와도 실컷 친해져야겠다. 박대리는 눈치보다 두려운 건 후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박대리가 돌아왔다. 터무니 없는 수입 때문에 예상보다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지만 흐뭇했다.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물론 여전히 눈치는 보인다. 딱 한 가지가 달라졌을 뿐.
“미쳤어?” “농담이지?”라고 했던 이들이 이제는 “대단해.” “용감해.” 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5년 208명에서 2013년 2293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지만 2013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여성 육아휴직자(6만 7323명)의 3.4%에 그쳤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저조한 이유 1위는 `회사 눈치`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