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각 계열사들이 최근 불거진 유동성 우려를 떨쳐내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내놨다. 롯데렌탈 등 알짜 계열사의 매각은 물론 투자를 줄이고 저수익·부실 자산과 사업장도 정리하기로 했다. 그룹의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활용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생각이다.
위기 탈출 나선 케미칼
롯데그룹이 지난 28일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책 실행에 나선다.
가장 많은 자구책을 내놓은 곳은 최근 회사채 위기로 롯데그룹 위기설의 진원지로 지목된 롯데케미칼이다. 우선 롯데케미칼은 기초화학 분야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축소시키면서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15조5343억원의 약 68%인 10조5947억원을 기초화학 부문에서 내고 있다. 기초화학 부문은 중국발 공급 과잉, 국제적인 수요 부진, 고유가 등으로 경쟁력이 크게 약화한 상황이다. 대신 롯데케미칼은 고부가가치의 첨단소재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현재 5조원(2023년 기준) 수준인 매출액을 2030년 8조원까지 키운다는 구상이다.
또 롯데케미칼은 내년부터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내에서 투자가 집행되도록 해 과도한 투자 지출도 줄이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2조7000억원),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 사업 '라인 프로젝트'(5조원) 등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롯데케미칼의 EBITDA는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투자 집행 금액은 총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총 EBITDA 7조8000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정하고 3조4000억원을 투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저수익 자산도 정리한다. 롯데케미칼은 이미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롯데우베합성고무(LUSR) 청산을 결정했다. 또 해외 자회사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도 나선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최근 불거진 회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롯데물산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 받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이 2013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발행한 공모채 중 14개 무보증 회사채(약 2조원 규모)가 최근 재무 특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EOD 사유가 발생한 상황이다.
롯데는 다음달 19일 사채권자 집회에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해 무보증사채를 보증사채로 전환하는 대신 재무 특약을 없애는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동산·계열사도 판다
롯데그룹 유통부문에서는 롯데쇼핑이 자산 재평가와 점포 효율화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다.
롯데쇼핑은 지난 2009년 이후 15년만에 토지 자산 재평가에 나선다. 보유 중인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다시 평가 받으면 그만큼 자산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롯데쇼핑은 이번 롯데그룹 위기설 이전인 지난달 이미 이 같은 자산 재평가 계획을 공유한 바 있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지난 2009년 자산 재평가 작업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춘 경험이 있다. 당시 재평가에서는 장부가 3조1000억원의 부동산이 6조7000억원으로 평가 받으면서 부채비율을 102%에서 86%까지 낮췄다. 현재 롯데쇼핑 보유 토지의 장부가가 7조6000억원으로 늘어난 데다, 토지 재평가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반영되면 롯데쇼핑의 자산 규모는 크게 확대된다.
이와 함께 롯데쇼핑은 부진한 점포의 매각도 지속한다. 이미 롯데쇼핑은 지난해와 올해 롯데백화점 미아점 주차장 부지, 롯데마트 고양중산점·양주점·영통점, 롯데슈퍼 여의점·봉선점 등을 매각, 폐점했다. 현재는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매각을 포함해 다각도로 효율화를 검토 중이다.
호텔롯데 역시 부동산 자산 매각을 포함한 유동성 확보에 나선다. 롯데쇼핑처럼 현재 보유 중인 부동산 자산을 롯데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지속한다. 호텔롯데는 지난 9월 'L7 강남' 건물을 롯데리츠에 3300억원에 매각하고 이 호텔을 임대해 운영 중이다.
호텔롯데의 면세사업부(롯데면세점)는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검토한다. 롯데면세점은 세계 1위 면세점을 목표로 해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왔으나 현재는 국내 면세업황 침체에 흔들리고 있다. 현재 롯데면세점이 운영 중인 해외 면세점은 일본, 베트남, 호주 등 시내면세점 4곳과 공항면세점 8곳이 있다.
아울러 롯데그룹은 알짜 자회사의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롯데렌탈의 최대주주인 호텔롯데는 외부의 원매자로부터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아 검토 중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5년 1조200억원에 롯데렌탈(당시 KT렌탈)을 인수하며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렌탈은 1조원 이상의 매각대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그룹 내 유일한 금융사인 롯데캐피탈도 잠재 매각 후보로 꼽힌다. 롯데캐피탈은 2019년 롯데그룹이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할 때 매물로 나온 바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회사채 특약 이슈 등 이해관계자들과 원만한 소통 및 협의를 통해 시장의 오해를 최대한 불식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