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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롯데]①'잃어버린 10년'에 케미칼까지 '흔들'

  • 2025.01.14(화) 10:00

경영권 분쟁 후 '주력' 유통·관광 실적 악화
석유화학 무리한 투자에 재무 건전성 악화
신사업 투자 적기 놓치면서 위기 장기화

그래픽=비즈워치

재계 6위 롯데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롯데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던 케미칼 사업 부진에 그룹의 근간인 유통 사업마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였다. 롯데그룹은 진화에 나섰지만 업계와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이에 롯데그룹 위기설의 시작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롯데그룹의 노력 그리고 롯데그룹이 그리고 있는 미래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롯데그룹이 '시계 제로'의 위기에 휩싸였다. 지난해 11월 온라인 상에서 확산된 위기설은 롯데그룹이 처한 상황을 단번에 드러낸 사례였다. 위기설 내용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롯데그룹은 이 작은 풍문에도 휘청이며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사실 롯데그룹 위기설은 늘 있어왔다. 10년 전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휴화산일 뿐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제기된 위기설은 꽤 구체적이다. 그런만큼 롯데그룹 내부의 위기감도 그 어느때보다 높다.

롯데그룹은 현재 대내외 리스크 대응에 실패하면서 주력 사업 대부분이 부진에 빠진 상태다. 여기에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지 못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열린 상반기 VCM에서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고 언급한 것에도 이때문이다.

롯데의 실기

롯데그룹의 위기는 2015년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 사이의 경영권 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분쟁은 2016년 사실상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었던 롯데그룹의 위기가 밖으로 드러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특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 비리가 불거진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까지 이어지며 급기야 신동빈 회장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대외 리스크도 컸다. 중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경제 보복과 국내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이 이어지면서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픽=비즈워치

구속됐던 신 회장은 2018년 말 복귀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코로나19로 롯데의 재도약은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롯데의 또다른 주축인 관광·서비스 사업이었다. 특히 호텔롯데의 실적이 급락하면서 오랜기간 준비해왔던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도 무산됐다. 유통, 관광계열사가 모두 흔들리자 롯데그룹의 매출액은 2018년 84조원에서 2020년 64조90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기 롯데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2011년을 전후로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왔다. 롯데그룹이 2010년 재계 5위에 오른 것도 M&A 덕분이었다. 하지만 2015년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그룹의 공격적인 M&A 행보는 주춤하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이 이젠 유통업의 대세가 된 이커머스 시장 진출 시기를 놓친 것도 뼈아팠다. 경쟁사들은 일찌감치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을 때 롯데는 오프라인 생태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탓에 경쟁사들에게 이커머스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뒤늦게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무리한 케미칼 투자

진짜 문제는 그 뒤에 따라왔다. 근간이었던 유통·관광업이 부진한 가운데 그나마 유일하게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롯데케미칼은 신동빈 회장이 애정을 갖고 키워온 회사다. 신 회장이 1990년 한국 롯데에 입사할 때 발을 들였던 첫 계열사는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었다.

오랜 기간 롯데의 포트폴리오는 식품·유통에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미래 먹거리로 석유화학을 낙점하고 이를 집중 육성했다. 2015년 삼성 화학 계열사를 3조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사들인 것도 석유화학 부문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래픽=비즈워치

롯데그룹의 석유화학 계열사들은 유통·관광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롯데그룹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롯데건설 등 계열사들이 흔들릴 때 곳간을 연 곳도 롯데케미칼이었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 석유화학 다운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롯데의 석유화학사업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을 높인 데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수요가 급감했다. 코로나19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하자 기초화학 비중이 큰 롯데의 석유화학사업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한때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롯데케미칼은 2023년 333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런 가운데 이뤄진 롯데의 대규모 석유화학 투자는 그룹 전체의 재무 위기까지 불러왔다. 최근 불거진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이슈가 대표적이다. 롯데는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놓으면서 위기를 간신히 넘겼지만 재무구조를 둘러싼 우려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요원한 실적 개선

이렇게 롯데의 주력 계열사들이 줄줄이 부진에 빠지면서 롯데그룹의 재계 순위도 2023년 기준 6위로 떨어졌다. 2010년 포스코를 제치고 5위에 오른지 13년만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신용도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롯데케미칼이 부진에 빠지자 2023년과 지난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지주, 롯데캐피탈, 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줄하향했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할 때 비용이 늘면서 부담이 커진다. 이는 현재의 위기가 향후에는 더 커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결국 롯데그룹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롯데케미칼의 실적 개선이 필수다. 하지만 석유화학 업황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역시 이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3분기까지 회복세를 보였지만 고물가와 소비 심리 위축으로 극적인 실적 개선은 어려운 상황이다. 호텔롯데는 면세점 부진이 길어지며 여전히 적자 상태다.

롯데그룹은 저수익·부실 자산 등을 매각하며 전방위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업 경쟁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동빈 회장도 최근 VCM에서 "빠른 시간 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형자산 매각, 자산 재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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