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신동빈 롯데 회장의 절박함…"이번이 마지막 기회"

  • 2025.01.11(토) 13:00

[주간유통]2025년 상반기 VCM
신동빈 "변화의 마지막 기회"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가치 창출 회의

롯데그룹이 새해 첫 주에 2025년 상반기 VCM을 진행했습니다. VCM은 Value Creation Meeting의 약자로, 직역하면 '가치창출 회의'정도가 되겠죠. 원래 이 회의의 이름은 '사장단 회의'였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이 이름으로 회의를 개최해 오다가 신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뒤인 2018년 이름을 VCM으로 바꿨습니다. 

이름만 바꾸면 뭐가 달라지겠나 싶지만, 이름을 바꾸면 달라지는 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일단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기존 사장단 회의는 '보고'에 가까웠습니다. 각 계열사 사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장에게 현안과 이후 사업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였죠. 

지난해 하반기 VCM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제공=롯데그룹

신 회장이 이 회의의 이름을 '가치를 창출하는 회의'로 바꾼 건 롯데의 가치 창출 및 중장기 성장 방향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단순히 사업 내용을 보고하는 데서 벗어나 각 계열사가 주요 이슈를 정해 발표하고 상호 소통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VCM으로 회의 이름이 바뀐 뒤, 2019년 하반기 VCM은 참석자들이 투자자의 관점에서 각 사의 발표를 듣고 가상 투자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요. 2020년엔 이전 회의에서 참관자에 가까운 포지션을 고수했던 신 회장이 직접 나서 임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수위 높게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형식의 파괴'는 이룬 셈입니다.

위기 또 위기

올해 상반기 VCM에서 신 회장은 '위기'를 강조했습니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업은 늘 위기입니다. 실적이 좋을 때도 미래의 위기를 준비하고, 실적이 안 좋으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잘 하고 있으니 조금은 풀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영인은 없습니다. 신 회장도 매년 VCM에서 "위기"를 외쳐왔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위기'는 진짜 조금 다릅니다. 이번 VCM에서 신 회장은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고 말했습니다. 신동주 부회장과의 마찰로 시작된 '왕자의 난'이 있었던 2015년이나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2021년보다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지난해가 더 힘든 해였다는 겁니다. 

롯데케미칼 분기 실적/그래픽=비즈워치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롯데케미칼 발 유동성 위기가 몰아닥치면서 롯데그룹은 사상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있습니다.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주력 계열사는 모두 끝모를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원흉'인 롯데케미칼은 최근 2022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적자 규모가 1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온라인상에서 '롯데그룹이 해체된다'는 정체 불명의 소문이 돌면서 롯데지주가 "사실무근"이라는 해명공시를 내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죠. 결국 롯데그룹은 그룹의 간판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는가 하면 알짜 계열사인 롯데렌탈을 M&A 시장에 내놓고 롯데마트·롯데면세점 점포를 매각하는 등 현금 마련에 나섰습니다.

롯데의 가치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라", "사업 구조를 혁신하라",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라". 신 회장이 올해 VCM에서 CEO들에게 강조한 목표입니다.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이번 위기를 대혁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 회장은 매년 VCM에서 "버려라", "바꿔라" 라고 주문해 왔습니다. 2020년엔 "기존 성공 스토리나 관성은 모두 버리고 스스로 시장의 새 판을 짜는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며 "상명하복 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임원들을 비판했습니다. 이듬해에도 "일부 회사에 권위적인 문화가 존재한다"며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CEO부터 변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충북 청주에 위치한 이브이시스 스마트팩토리 청주 신공장을 방문했다./ 사진=롯데그룹

신 회장으로서는 당연한 주문입니다. 신 회장은 국내 경제계에서 비교적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소탈한 회장'에 속합니다. 수행비서 없이 단신으로 가방 하나 매고 이동하는 일도 잦다고 합니다. 그런 회장 밑에 있는 CEO들이 상명하복을 강조하고, 기존의 공식만 답습하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할 겁니다.

앞서 신 회장이 사장단회의의 이름을 VCM으로 바꾸며 '형식의 파괴'를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 회장이 몇 년째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내용의 파괴가 이뤄지진 않은 듯 보입니다.

아직도 롯데그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수적', '안정지향적'입니다. 수십년 간 이어져 온 그룹의 문화가 그렇게 빨리 바뀌진 않을 겁니다. 신 회장의 바람처럼 롯데가 혁신의, 변화의 아이콘이 되는 날이 올까요. 와야 할 겁니다. 신 회장의 말마따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거든요.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