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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계 증권사 CEO의 '파리목숨' 임기

  • 2014.07.30(수) 18:18

김기범 KDB대우증권 사장의 갑작스런 퇴진에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증권업계 전반에 불어닥치고 있는 구조조정 삭풍을 감안하면 CEO가 칼바람을 맞은 게 경천동지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사임 타이밍과 이유 때문에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은행계 금융지주회사의 우산을 쓰고 있는 증권사 CEO들의 '파리목숨' 임기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김 사장의 중도 사퇴 직후 쏟아진 각각의 이유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대우증권은 중국 고섬 사태로 돈 뿐 아니라 명예에 큰 오점을 남겼고 김 사장 임기 내내 여파가 지속됐다.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이 증권사 대주주인 산은지주 입장에서는 마뜩지 않았을 수 있다.

 

대우증권 매각작업을 위해 김 사장의 용퇴가 필요했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앞서 우리투자증권 황성호 전 사장은 연임 후 임기를 상당기간 남긴 상황에서 '매각을 고려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대우증권 사장의 사임 역시 순조로운 매각작업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볼 여지를 남긴다.  

 

증권가에서 논란이 되는 건 사퇴 배경과는 다른 대목이다. 김 사장의 중도 퇴진이 증권업계에 던져준 또 다른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업계 상위권인 대형 증권사들 대부분은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 체제에 놓여있다. 은행계 금융지주회사의 일개 자회사로서 대주주가 처한 상황이나 의중에 따라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회사측은 김 사장의 퇴진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간 사업추진이나 구조조정 등을 둘러싸고 산은지주와 갈등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김 사장은 강만수 전 산은지주 회장 시절 임명됐고, 지난해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이미 연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져왔다.

 

증권업계 한 임원은 산은지주가 지난 6월말까지의 성과에 대해 평가를 내리겠다고 한 후 7월이 돼도 잠잠해 큰 변화는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사단이 났다고 촌평했다. 은행 금융지주의 우산 아래 있는 대형 증권사 CEO들의 현실과 한계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대개 금융지주 내 은행과 증권 등 여러 금융계열사들이 한데 모이면 시너지를 낼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은행이 중심에 있는 지주사들은 결국 은행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지주 전환 이후 지주사 내 은행업종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졌고 그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곳도 적잖다. 대우증권만 해도 업계 상위권에 랭크돼 있지만 산은지주 내에서는 비중이 10%선에 불과하다.

 

물론 지주사 체체가 아니더라도 계열사 CEO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대주주나 오너의 의중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은행장이 지주사 회장을 겸하고 있는 시스템 하에서 계열 증권사 CEO의 때 이른 용퇴는 가뜩이나 어려운 증권사에겐 이중고다.

 

대우증권은 그간 김기범 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증시 부진에 따른 경영난을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퇴임으로 김 사장이 주도한 점포혁신 등 새로운 변화 시도는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CEO 사퇴의 영향이, 그가 추진해온 사업 전반에까지 확산되는 셈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서는 업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과를 내는 증권사들이 주목받았고 그 뒤에는 안정된 지배구조가 있었다. 이런 증권사들은 장수 CEO들이 이끌고 있다. 그런 CEO를 따르고 각 부문을 주도하는 임원들의 임기도 길다. 직원들의 불안감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한정된 시장에 수많은 회사가 난립한 증권업계의 생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장이 정해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과연 수년 뒤에도 지금처럼 업계 상위를 유지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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