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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경제팀]<에필로그>대통령과 경제수장의 소통

  • 2013.08.29(목) 14:03

머리 맞대고 '공약가계부'의 늪에서 벗어나야

"정말 큰 일 하십니다. 투자하는 사람은 업어줘야 됩니다." 지난 7월 31일 예순넷의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두 살 아래 김재신 OCI-SE 사장을 두 차례나 업었다. 이른바 '어부바 세레머니'.

 

불과 20일 전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하는 분들을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어부바 세레머니'는 현 정부 1기 경제팀장과 대통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 청와대만 바라보는 사령탑

 

지난 8월 8일은 현 부총리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듯 싶다. 이날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사실상의 증세안으로 월급쟁이, 중산층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나흘 만에 박 대통령이 전면재검토를 지시하자 현 부총리는 7개월 동안 고생하며 마련한 세제개편안을 곧바로 철회했다.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 사과드린다"고 말하면서. 그리곤 하루 뒤 수정안을 내놓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12일 세법개정안 전면 재검토 관련 브리핑에서 인사하고 있다.]

 

위 두 사례를 들며 "현 부총리를 위시한 현 경제팀은 대통령 눈치만 보다 6개월을 보냈다"는 쓴 소리가 적지 않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제개편안 파문은 결과적으로 증세와 연결돼 있음에도 현 경제팀은 '증세없는 복지 확대'라는 박 대통령의 서슬퍼런 고집에 꼼짝 못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현 부총리는 "많은 국가들이 세율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다"며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증세를 통해 세입을 확충할 수는 없다"고 말했었다.

 

청와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에만 익숙한 이런 모습은 관료 출신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책임부총리'를 강조하며 경제부총리 제도를 부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는데 급급하고 있는 모습이다.


◇ 대통령 '경제 교사'도 비판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이 지난 25일 내놓은 평가 보고서도 현 경제팀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핵심 정책 자료인 '2013년 경제정책 방향'이 MB정부와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 자료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경제 안정을 강조한 2011년 기재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재원 확보' 한 가지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 창조경제에 관한 일부 정책은 기존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에 창조라는 말만 덧붙였다고 혹평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장기 비전이 보이지 않고, 올해 세수 결손액은 15조~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도 경제팀이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는 "경기회복이 쉽지 않은 국내외적 상황에도 기재부는 올 하반기 3%대 중반, 내년 4%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고 낙관하고 있다"면서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할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이런 낙관적 거시경제 여건을 전제로 짜여질 경우 박근혜 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인 김광두(왼쪽) 서강대 교수가 원장이다. 이 연구원 보고서가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김광두 교수가 '성장' 분야에 대한 과외교사라면 '분배' 측면의 가정교사인 김종인(오른쪽) 전 의원도 현 경제팀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의원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은 옛날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세제 뜯어고쳐 깜짝(부양)할 생각이나 하고 있고, 그래선 아무것도 안 된다.경기 부양한다고 억지로 자금을 투입하면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대통령과 소통해 '공약가계부' 다시 짜라

 

1기 경제팀에 치명상을 입힌 세법개정안 파문은 결국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비롯됐다. 현 부총리는 지난 5월 새누리당에 박근혜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해 5년간 135조원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의 '공약가계부'를 보고했다.

 

하지만 이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 역시 우회적으로 공약가계부를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률 전망이 과도하게 높게 설정됐고 경기 악화로 법인세 등의 세수 감소도 심각하기 때문에 공약가계부를 원안대로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 부총리가 대통령을 설득해 공약가계부를 수정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경제사령탑은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공약 하나 하나를 검토한 뒤, 못할 것은 못한다고 과감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현 부총리는 이전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나 복지 정책에 대해 축소·수정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그런 논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약가계부 이행에 차질이 없겠느냐는 질문에도 "현재로서는…(없다)"고 답했다.  내심 공약 수정을 바라며 '아직' '현재로서는'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 대통령은 한번 믿고 기용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그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다. 여러 차례 위기에도 현 부총리를 신임했다. 그 신임의 이유가 단지 '지시를 잘 이행해서'가 아니라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적임자'이길 바란다. 현 부총리가 자신의 '자리'를 걸고 대통령과 소통에 나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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