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해 봉사할 일꾼을 뽑는 4·15 총선은 끝났지만 국민들의 느끼는 고통은 이제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누구에게 맡길까에 대한 결정은 내려졌고, 이제는 경제 문제 해결에 전념할 때다. 한국 경제의 융성을 이끌어온 기간산업이 맥없이 흔들리고 있고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은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꺾이고 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혁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창간 7주년을 맞는 비즈니스워치는 [다시 경제다]를 주제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지난 11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바이러스는 수십, 수백년을 이어오던 우리사회 곳곳의 풍경을 불과 석달만에 바꿨다. 반가운 마음으로 나누던 악수는 금기가 됐고 퇴근 후 마주보고 술잔을 기울이던 생활은 사치였다.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은 부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대못으로 국민들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 코로나, 일상을 흔들다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구분하던 기원전(BC)과 기원후(AD) 표기를 이제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의미하는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바꿔써야 할지 모른다는 씁쓸한 얘기도 나온다.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4·15 총선은 과거완료형이지만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이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없고 상인들은 손님을 잃었다. 국민들은 마스크 한장 없이는, 친구를 만나거나 나들이를 하거나 쇼핑하기를 꺼리는 '코로나 감옥'에 갇혔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는 "21대 국회는 당장 극심하게 침체된 내수를 살리는 방향으로 경제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며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 대한 자금지원은 물론 고용문제 해결책을 시급히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앓아누운 세계경제
이미 각국의 경제지표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동중단과 사업장 폐쇄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미국의 일자리는 불과 4주새 2200만개가 감소했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실업률이 2분기 중 최대 20%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대규모 사망자가 나온 중국과 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두달 연속 수출과 수입이 감소하는 등 성장동력 약화가 확연해졌고 유럽은 경기체감지수가 1985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폭 떨어졌다. 한국이 기댈 언덕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방역의 귀감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전년동월대비 19만5000명 감소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2010년 1월 이후 최대 기록이다. 일시휴직자도 1983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인 126만명 늘었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2분기 이후에는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업과 건설업이 위축되고 투자부진으로 제조업 회복도 지연되면서 고용부진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이런 위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 경제에 큰 상처를 남긴 1997년 외환위기는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국지적 성격이 강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역성장(-5.5%)했으나 미국(4.5%)을 비롯해 세계경제는 2%대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반면 코로나19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세계경제를 뿌리째 흔들었다. IMF의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3.0%.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이다. 그나마 이런 전망은 하반기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코로나19를 잡지 못하면 경기침체의 폭이 더 깊고 오래갈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도 다르다. 당시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금융쇼크 치료에 집중하면 됐지만 이번 위기는 공장이 문을 닫고 소비가 마비되는 등 실물부문 충격이 훨씬 크다.
과거의 해법이었던 수출 드라이브나 규제를 찔끔 풀어 내수를 진작시키는 정도로는 약발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강력한 내수억제책이다. 경제를 희생하는 대가로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 시험대 오른 경제·산업정책
각국 정부가 현금을 살포하고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전례없는 수단을 꺼낸 것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코로나19의 충격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 증권사 등을 상대로 10조원 특별대출제도 등 전례없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법률적 제약과 국회 동의절차 등에 발이 묶여 회사채 직매입과 같은 과감한 정책은 펴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재정건전성을 걱정하기보다는 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전쟁 중이고 그것도 전세계가 싸우는 세계대전으로 봐야한다"며 "국가부채 문제에 집착해 경제를 살려야할 타이밍을 놓쳐선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이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주춤거리는 사이 항공업을 필두로 자동차·석유화학·중공업 등 주요 산업의 맥박은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지난 16일 자동차·철강·석유화학·기계·조선 등 5개 업종협회와 공동으로 연 대책회의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내수와 수출감소가 동시에 진행돼 기업들의 어려움이 더 크다"면서 "산업생태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 기득권 깨고 새판 깔아야
아예 새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외환위기 당시 쇠락하는 중화학공업을 대신해 정보통신기술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한 것처럼 코로나 이후를 염두에 둔 새로운 먹거리 창출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라는 획기적 검사방식을 도입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 시도가 각 분야에서 나와야 한다.
여기에는 기득권의 반발을 감내하겠다는 결단이 필수다. 과거에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스크린쿼터 축소 등 기존 질서를 깨는 정책이 나올 때면 사회적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빗장을 풀어 국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인 게 지금의 'BTS'나 '기생충'과 같은 성과로 이어졌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이유로 타다와 같은 혁신서비스가 택시업계와 관련부처의 반대로 좌초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막 성장하려는 서비스마저 규제를 만들어 옥죄는 현실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도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얘기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규제나 기득권의 저항으로 혁신을 거부하면 낙오하는 것"이라며 "정책방향을 수정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