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해 봉사할 일꾼을 뽑는 4·15 총선은 끝났지만 국민들의 느끼는 고통은 이제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누구에게 맡길까에 대한 결정은 내려졌고, 이제는 경제 문제 해결에 전념할 때다. 한국 경제의 융성을 이끌어온 기간산업이 맥없이 흔들리고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은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꺾이고 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혁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창간 7주년을 맞는 비즈니스워치는 [다시 경제다]를 주제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지난해 대규모 원금 손실을 부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는 복잡하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기초 자산의 움직임과 연계해 미리 정해진 방법에 따라 이익이 결정된다. 투자 설명서를 읽다보면 난해한 경제 용어를 한두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를 기초 자산으로 한다. 독일 금리 변동에 따라 이익이 나거나 손실을 볼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의 금리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해외, 그것도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의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줄 어찌 알았으랴. 결국 대부분 투자금 전액을 날리게 됐다.
더구나 이 상품은 시중 은행 창구를 통해 판매됐는데 직원들이 설명서만 읽어줬을 뿐 고객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묻지 않아 이른바 '불완전 판매'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판매 직원 조차 설명서에 나온 용어를 잘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게 된 '라임 사태'도 상품의 복잡·난해성, 엉터리 판매면에서 DLF 건과 판박이다. 한 금융투자업체 관계자는 "단순하지 않은 구조의 상품을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투자자에게 무분별하게 판매한 것이 일련의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 잊을만 하면 되풀이, 대규모 금융사고
대규모 금융 손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했다가 급작스런 환율 변동에 중소기업들이 수조원 규모의 피해를 입은 2008년 '키코 사태', 부실화된 기업어음(CP)를 발행해 막대한 개인 투자 손해를 보게 한 2012년 '동양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크고 작은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생한 금융 사고는 141건, 금액은 3152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 동안 건당 23억원 규모의 사고가 열하루에 한번 꼴로 발생한 셈이다.
왜 잊을만하면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일까. 우선 전문가들은 금융투자 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상품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것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주가연계증권(ELS)와 파생결합증권(DLS) 등 파생결합증권은 2003년부터 발행되기 시작, 현재 잔액이 106조원에 이르는 주요 금융투자 상품으로 성장했다. 신규발행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아울러 사모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성장, 2008년 127조원에서 지난해 312조원으로 설정액이 두배 이상 불어났다. 설정 규모면에서 지난해 237조원에 그친 공모펀드를 앞섰다.
문제는 일반 투자자들의 금융투자 이해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파생상품 투자자들은 '기초자산'이나 '행사가격' 등 상품과 관련한 핵심 개념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상품 수익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는데 반해 위험성에 대해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투자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며 투자 위험이 높은 상품에 자꾸 손이 가긴 하지만 결국 수익률 손실을 본다는 것이다.
◇ 금융당국 안이한 대응, 사태 키워
금융 상품이 어려워지고 그만큼 위험성이 높아지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어 장치를 잘 마련해야 한다.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을 튼튼히 고치고 소를 잃게 한 사람이 있다면 명확하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매번 안이하게 대응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반복될 때마다 뒤늦게 나서고 해당 업체가 징계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지만 근본적 문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DLF 사태와 관련해 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당국이 피해를 키운 장본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월 논평을 내고 "부실한 금융기관 감독이 DLF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금감원이 만약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예방 및 상품등급 사전심사 등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 기능을 철저히 수행했다면 이번 사태는 예방 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재대로 된 투자자 보호 환경 절실
금융회사들이 단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일단 이익을 내고 보자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상품을 파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DLF와 라임 사태에서 보듯이 관련 상품을 판 은행과 증권사의 책임이 적지 않다.
라임 펀드 판매사들은 사모펀드를 보다 많이 팔기 위해 고객들에게 단기형 펀드 설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을 내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던 셈이다.
DLF 판매 과정에서 은행은 고객 뿐만 아니라 상품을 판매한 프라이빗뱅커(PB)에게도 사실상 원금 손실 위험을 숨긴 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이들 은행의 내부통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실적 배점을 높여 판매를 독려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 금융투자사 관계자는 "증권사나 캐피털 회사 등이 공격적인 투자로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오래동안 예대마진에 의존해온 은행들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돈이 된다 싶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라며 "증권사들은 독일 국채 금리 하락을 감지했으나 그렇지 못한 은행들은 무리하게 연계 DLF 상품을 팔다 사단이 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저성장 기조에서 DLF 및 사모펀드와 같이 높은 투자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 수요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금융투자 시장의 한단계 높은 성장을 위해 제대로 된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파생결합증권 수익구조의 복잡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투자자의 행태적 편의가 비합리적 투자의사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투자자 보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라며 "이것이 투자자와 금융회사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