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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주택시장]③전세난→역전세난→깡통전세?

  • 2019.02.19(화) 14:45

대규모 단지 입주 등 전세 공급 늘면서 가격 하락
갭투자 여파·대출도 어려워 보증금 반환 '위태위태'

#2016년 초. 신혼집 구하기에 목말랐던 직장인 A씨. 그는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전셋집을 찾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러던 중 입주한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부랴부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지방에 거주하던 A씨 부모님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직접 해당지역 공인중개소를 찾아 집을 둘러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가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A씨는 집도 보지 못한 채 신혼집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2019년 초. 오는 5월 전세계약 종료에 맞춰 자녀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계획중인 B씨. 그러던 중 갑자기 집주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집 팔려고 하는데요. 집 좀 보여줄 수 있어요?" 다주택자여서 세금부담 때문에 집을 팔 생각이란다. 갑작스레 걱정이 몰려왔다. "저희 5월에 나가야 하는데요." 그러자 집주인의 답변. "집이 팔려야 나가죠. 대출도 안되고 저희도 전셋돈 빼줄 돈이 없어요." 이후 한달 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집이 팔리지도 그렇다고 인근 입주물량이 많아 세입자 구하기도 어렵다. 전셋돈을 제때 받아 나갈 수 있을까.

'눈물의 전세난' '미친 전셋값'이 부동산 시장을 뒤덮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전세시대가 저물고 월세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규모는 다시 늘고 있다. 작년부터는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기 어려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역전세가 현실화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선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진: 이명근 기자/qwe123@

◇ 늘어나는 공급 압박

부동산114에 따르면 2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대비 0.07% 떨어져 10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9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단지인 송파 헬리오시티 입주 여파로 촉발된 서울 전세가격 하락세가 강동구를 넘어 광진구와 중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강동구 전셋값은 0.26% 떨어졌고 광진구(-0.25%)와 중구(-0.24%), 종로구(-0.19%) 등도 서울 평균보다 전셋값 하락폭이 컸다.

강동구에서는 암사동 프라이어팰리스가 1000만원, 명일동 삼익그린 2차가 1000만~1500만원 정도 떨어졌고, 광진구에서는 자양동 더샵스타시티 전셋값이 2500만원 가량 하락했다는 게 부동산114의 분석이다.

전셋값 약세가 지속되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분양시장 활황기에 공급됐던 새 아파트들이 속속 준공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입주를 앞두고 있어서다.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전세입자 확보를 통해 잔금을 치르려는 수분양자들이 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공급이 풍부한 상태다.

실제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4만3106가구, 멸실 주택 수는 3만7675가구(부동산114 조사)로 5년 만에 처음으로 주택 공급량이 멸실 주택 숫자보다 많았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2015년 이후 작년까지는 멸실 주택이 입주 물량보다 많아 주택 희소성 요인이 강하게 부각되는 환경이었다"며 "반면 올해는 멸실 대비 입주물량이 5년 만에 증가로 전환되면서 전세가격 하향 안정화와 매매가격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월세 혹은 반전세로 전환했던 집주인들이 실물 경기 악화 등의 영향으로 목돈이 필요해지면서 다시 전세로 전환하고 있는 점도 전세주택 공급을 늘리는 또 다른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 역전세 넘어 깡통전세 우려 커져

전세가격 하향 안정화와 임대차 시장 내 전세 비중 증가는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한국감정원 분석 결과, 월세보다는 전세 거주 시 주거비 부담이 15% 이상 낮다.

문제는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역전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전세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전세공급 > 전세수요) 전셋값이 이전보다 낮아져 발생하는 현상이다.

가령 2년 전 세입자는 2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새로운 세입자는 1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다면 역전세다.

직방에 따르면 2018년 전세보증금이 2년 전 전세가격보다 하락한 주택은 전국 기준 38.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은 51.3%로 절반 이상의 전셋집이 2년 전보다 가격이 떨어졌고, 수도권에서도 이런 주택 비중이 29.7%로 급증했다.

보통 집주인들은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금을 기존 세입자에게 보전해준다.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셋값 하락으로 자신의 전세금을 보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경우) 한 유주택자들이 많은데 반해 최근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역전세 현상이 깡통전세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깡통전세는 전세금과 집주인이 받은 대출 합산보다 주택 매매가가 낮아지는 것으로,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 전세금을 보전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보증금이 크게 떨어졌어도 임대인 신용도와 자금 여력에 따라 미반환 위험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시장에 미반환 위험성이 높고 한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최근 추세가 전세가격 하락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 시장 모니터링과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 등은 아직 역전세를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 투자지원부장은 "역전세 현상이 발생하려면 전셋값이 7~8% 이상 하락해야 하는데 주요 수도권 지역은 아직 그 정도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며 "다만 전셋값 하락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이들 지역에서도 역전세 현상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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