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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 전세시장에 약일까 독일까

  • 2019.09.24(화) 10:45

임대인 부담 커져 전셋값 상승 우려 '역효과 부각'
서민 주거안정에 필요 vs 임대 공급 확대가 우선

잠잠하던 임대차 시장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전월세상한제 도입까지 이어지면 전‧월세 가격을 끌어올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어서다.

이 정책은 집을 빌려 사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에 앞서 부작용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에 반해 일부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일 뿐,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어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 슬금슬금 오르던 전세시장, 폭풍전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9월 셋째 주 수도권 전세가격 변동률은 0.06%를 기록했다. 서울은 0.04%로 전주의 상승폭을 유지했고, 인천과 경기는 각각 0.04%, 0.07%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거주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체적인 가격 상승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올해 누적 기준으로는 서울(-1.81%)과 경기(-2.74%), 인천(-1,74%) 등 수도권(-2.31%)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어 아직은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여당이 계약갱신청구권 법제화를 공식화하면서 전세시장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 제도는 전‧월세 세입자에게 2년 동안 보장되던 임대기간을 4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2년 계약 종료 시점에 세입자가 계약 연장을 원하면 집주인(임대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이 제도는 전월세 상한제와 함께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단순히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것 뿐 아니라 가격(전세보증금‧월세 등) 상승에도 제한을 둬야 정부가 기대하는 서민 주거안정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임차인 보호제도가 잘 갖춰진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차 계약기간은 무제한, 임대료도 상한선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 제도 뿐 아니라 임대인들 역시 임차인을 파트너로 여기며 이들의 주거 안정을 중요시 여기는 게 이곳 문화다. 관련기사☞[남의집살이 in 유럽]②"2년마다 계약한다니, 굉장히 이상하네요"

하지만 국내 임대차 시장은 수요-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가격이 정해지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면 임대주택 공급이 줄거나, 손해를 메우려는 움직임이 발생해 임차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시장에서 가격을 규제하는 정책은 임대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공급 측면에서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라며 "이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월세라면 가격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지만 전세제도는 사금융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우선

전‧월세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는 기본적으로 수요에 비해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 기인한다. 서울 거주자의 절반 이상이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집주인들을 압박하는 정책은 순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월세 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도입에 앞서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해외에서도 임차인 보호제도를 도입할 때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집주인에게 건축비나 수리비용을 저리로 제공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임대주택 공급이 많으면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효과가 있지만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임대인 소득이 줄어 임대주택 공급이 감소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유재산을 손대는 정책보다는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덕례 실장도 "궁극적으로는 공공임대를 많이 공급하면 되지만 재정부담 등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민간 시장에서 주택 임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민간 임대주택을 공적임대로 만들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가격이 급등할 것이란 전망은 기우라는 주장도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전셋집마다 계약 기간과 종료 시점이 천차만별인데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일시에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계약이 끝나고 새로 계약을 맺는 경우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서민 주거 안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직접 입주하려 했던 집주인에게는 갱신청구권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거나, 주변 시세보다 지나치게 가격이 낮은 경우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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