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전세 살면서 시장을 좀 보자'
4~5년 전 수도권 주택시장을 뒤흔들었던 '눈물의 전세난'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약 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이라는 파급력이 큰 정책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분양가상한제로 강남 재건축을 비롯한 서울 주요지역에서 신규주택 공급이 축소되는 반면 싼값에 분양을 받으려는 청약 대기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집값 불확실성에 주거비 부담이 적은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 등이 겹치면서 우려는 조금씩 현실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재건축 이주수요가 줄고, 임대사업자 등록 정책으로 전세난 수준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슬금슬금 오르는 전셋값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첫 주 서울 전세가격 변동률은 0.04%로 전주보다 0.01%포인트 확대됐다. 특히 서초(0.19%)와 강남(0.08%), 송파(0.04%) 등 강남3구를 비롯해 동작구(0.1%) 등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했다.
이들 지역은 거주 수요가 꾸준하고, 재건축 등 주택 정비사업으로 인한 이주수요가 발생하면서 전셋값이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간 하향 안정화를 유지하던 전세가 변동률은 지난 7월 초부터 상승세로 전환했다. 이후 지난달 18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5%로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전세난 우려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됐던 시기 전세난이 엄습했던 까닭이다.
한국은행은 2014년 10월 기준금리를 2%로 낮추는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1.75%로, 5월에는 1.5%로 인하했다. 금리가 급격히 낮아지자 목돈(전세보증금) 활용도가 떨어졌고 이에 집주인들은 전세를 반전세 혹은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세 공급이 급격히 줄면서 전세 품귀현상이 발생했고, 전셋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4년 10월부터 2015년 말까지 서울 전셋값 변동률은 주 당 평균 0.21%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임대차 시장이 긴장하는 이유다.
◇ 분양가상한제가 불붙일까
아직은 전셋값 상승폭이 과거 전세난 수준과 비교해 크지 않고, 입주 물량도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당장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여기에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신규주택 공급 둔화가 현실화되면 임대차 시장에서 전셋집이 줄어들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집값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비싼 구축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신규 분양으로 내 집 마련을 계획하는 실수요자가 늘어나면서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집값 하방 압력이 존재하고, 이는 임대차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실수요자들이 일단 전세로 살면서 추후 주택 매입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은 전세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처럼 서울에서 시작해 수도권 전역으로 전세난이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지 않은 강남과 마용성 등 주거 중심 지역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이후 전세난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면서도 "서울을 벗어난 수도권은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주택 공급이 계획돼 있어 이곳까지 전세난이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분양가상한제로 전세시장이 오히려 안정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재건축 단지가 사업 절차 속도를 늦춰 이주 수요가 사라지면 전세시장은 안정된 수급상황을 유지할 것"이라며 "또 정부가 추진한 임대사업자 등록 정책으로 150만호가 민간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것도 전세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