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 여파로 들끓었던 청약시장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분위기다. 지방 일부 지역에선 공급 물량 확대,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청약 미달 현상이 나오고 수도권에선 분양가 부담에 따른 청약 포기 사례도 포착되고 있다.
주요 지역 위주로 불었던 '선당후곰'(일단 청약에 당첨된 후 고민한다는 뜻) 열풍도 한 풀 꺾일 전망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에 청약 인기는 이어지겠지만 대출규제 강화, 추가 기준금리 인상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청약 대기자들이 '옥석가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선당후곰 옛말? 이제 청약 포기요~
최근 지방을 중심으로 청약 미달 사태가 발생하는 등 청약 분위기가 반전하는 모습이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HUG의 고분양가 관리, 분양가상한제 등 분양가 규제를 받는 신축 분양 아파트에 수요자들이 몰려왔다. 주요 지역에선 시세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한 분양가가 책정되며 이른바 '로또 분양'으로 세자릿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분양가 마련이 어려워도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생각으로 청약 신청을 하고 이후 무리하게 '영끌'하는 사례도 속속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부터 청약 시장에 심상치 않은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에서 분양된 707개 아파트 가운데 미달이 발생한 단지는 총 117곳으로 전체의 16.5%에 달했다. 분기별 전국 아파트 청약 미달 단지 비중은 △1분기 6.8%(469개 중 32개) △2분기 10.7%(633개 중 68개)△3분기 8.8%(569개 중 50개)였다가 4분기들어 전분기 대비 두 배가량 커졌다. 연중 최고치다.
특히 지방은 4분기 439개 청약 단지 가운데 117곳이 미달돼 그 비중이 26.7%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 11.7%(273개 중 32개) △2분기 15.8%(393개 중 62개) △3분기 14.4%(348개 중 50개)보다 큰폭으로 높아졌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 등에서 무더기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달 청약한 대구 달서구 감삼동 '해링턴플레이스 감삼3차'는 특별공급을 제외한 358가구 청약에서 1·2순위까지 모두 85명만 신청했다. 같은 기간 청약을 받은 달서구 두류동 '두류 중흥S-클래스 센텀포레'(이하 일반분양 가구수, 270가구)와 동구 효목동 '동대구 푸르지오 브리센트'(759가구)도 각각 2순위까지 미달됐다.
포항 남구 '남포항 태왕아너스'(334가구), 포항 북구 흥해읍 '포항 한신더휴 펜타시티' A2(1567가구)·A4블록(591가구), 경남 사천시 정동면 '사천 엘크루 센텀포레'(476가구), 익산 춘포면 '익산 더반포레'(777가구), 전남 구례군 '구례 트루엘 센텀포레'(245가구) 등도 미달됐다.
분양 물량 확대, 집값 고점 인식 등이 청약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R114 집계 기준 지난해 대구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7130가구로 전년(1만5549가구) 보다 10%(1581가구) 증가했다. 내년엔 2만 가구, 2023년엔 3만4000가구로 급증한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대구는 11월 셋째주(15일) 하락 전환하기 시작해 9주째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이고 있다. 1월 둘째주(10일) 기준으로는 -0.06%로 지방 변동률(0.04%)보다도 크게 떨어졌다.
올해도 서울은 뜨겁다?…'옥석가리기' 할듯
다만 서울 등 주요 지역에선 여전히 청약 열기가 꺼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R114 조사에서 지난해 분기별 미달 발생 단지 비중을 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은 4분기 중 3분기 동안 미달률 0%를 기록했다. 2분기에도 240곳 분양 중 6곳이 미달되면서 미달률 2.5%에 그쳤다.
올해는 대출규제 강화, 금리 인상 등에 따른 분양가 부담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1월부터는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는 모든 대출에 대해 DSR이 연 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다. 여기에 계약금과 잔금대출이 포함되면서 현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계약을 포기할 상황에 처했다. 올해 7월부터는 DSR 규제 기준이 총 대출액 1억원으로 강화되기 때문에 대출받기가 더 까다로워진다.
대출이 나온다고 해도 금리 인상 또한 발목을 잡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건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금리, 중도금대출금리 등도 빠르게 오르며 높아진 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수준이 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3294만4000원에 달했다. 지난 1월 2826만8000원에 비하면 1년만에 16.5% 오른 셈이다. 최근엔 대부분 단지 계약금이 분양가의 20%로 책정되며 초기 자금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이같은 규제로 계약금, 중도금을 마련하지 못해 청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눈에 띄고 있다.
지난해 10월 청약을 진행한 '송도 센트럴파크 리버리치'는 1순위 평균 경쟁률 57.5대 1을 기록했으나 미계약분이 발생해 지난달 두 번에 걸쳐 무순위 청약(줍줍)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청약을 받은 '송도자이 더 스타'도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 13대 1을 기록했지만 이후 약 530가구(부적격자 200여 가구)가 무더기로 계약을 포기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 단지는 모두 전용 84㎡ 이상의 중대형 물량으로 대부분 분양가가 9억원을 넘겼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서울 등 주요 지역의 청약 열기가 뜨거울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분양가 등에 따른 '옥석 가리기'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은 물량 자체가 많지 않고 분양가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약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대출규제와 이자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대출 가능 여부에 따른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위원은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는 비인기 지역에선 입지, 브랜드, 분양가에 따른 청약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대출규제 강화로 분양가가 청약 경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청약자들의 '옥석 가리기' 현상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