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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분양 공포]②벼랑 끝 건설사, 미분양 '눈물의 털기' 재현

  • 2022.12.07(수) 06:30

PF 자금 경색에 미분양까지…할인분양 마케팅 확산
침체 지속땐 준공 후 미분양·신용등급 하락 등 '악순환'

10여 년 전 건설사들은 미분양 물량을 줄이기 위해 이른바 '눈물의 마케팅'을 벌인 바 있다. 계약금을 줄여주거나 분양가를 할인해주는 것은 물론 백화점 상품권이나 텔레비전, 자동차 등 각종 경품을 주는 이색 마케팅 전략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 침체가 지속하며 미분양은 갈수록 늘었고 결국 건설사들이 줄도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국내 건설 업계에 당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할인분양과 중도금 무이자 등 미분양을 털어내기 위한 각종 마케팅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할 경우 준공 후 미분양이 증가하거나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등 건설사들이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할인 분양에 현금 지원…미분양 털기 안간힘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택 경기 악화로 수요가 위축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을 털어내기 위한 각종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지난 6월 완공돼 입주가 시작되자 분양가를 할인해 주는 마케팅에 나섰다. 11억원대였던 전용 78㎡가 지금은 8억 중후반대에 재분양을 하고 있다.

분양 계약을 하면 아예 현금을 지원하는 마케팅도 등장했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는 계약금 10%를 입금하면 이후 중도금의 40%(4회차)까지 무이자 혜택과 함께 한 달 안에 3000만원을 입금해주고 발코니 확장 공사도 무상으로 제공하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계약금을 줄여주거나 중도금 대출에 확정 고정금리를 제공하는 등의 마케팅이 갈수록 확산하는 분위기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마진을 줄이면서까지 미분양 털어내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앞으로 분양 시장 침체가 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가 최근 금융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를 줄이면서 자금 경색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할인분양의 경우 역마진 위험은 물론 기존 수분양자들과 갈등 등의 리스크가 있지만, 준공 후 미분양 등으로 인한 자금 경색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육지책을 쓰는 셈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미분양 증가로 신용등급 하락 '악순환' 우려도

건설업계에는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미분양이 급증하는 것은 물론 원자잿값 폭등과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자금 경색까지 겹치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PF 부실의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줄도산했던 사태가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부동산PF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으로 40개 업체의 사업장 233곳 중 31곳의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가 지연 혹은 중단된 이유로는 'PF 미실행' 66.7%로 가장 많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특히 건설사들은 공사가 지연 또는 중단된 사업장의 조기(1~2개월 내) 정상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가장 많은 44%가 '매우 낮음'이라고 답해 경기가 단기간에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미 실행한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 2000억원가량으로 크게 증가했다. 당분간 금융사들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할인분양이라도 해서 미분양을 줄이면 그나마 낫지만, 시장 침체로 인한 집값 하락이 지속할 경우 향후 미계약은 물론 계약 해지나 수분양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등의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어떡하든 분양을 마무리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준공 후 미분양이 늘거나 계약 해지가 발생하면서 자금이 일시적으로 들어오지 않게 돼 건설사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분위기이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초 건설사들의 사업보고서가 공개되면 일부 건설사의 부실한 현금흐름이나 재무 상태가 드러나면서 건설경기가 급격하게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은 어느 건설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되면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향하는 등 악순환이 시작할 수 있다"며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 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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