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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트라우마에 회계기준 바꿨지만...

  • 2016.11.29(화) 09:47

계약별 미청구공사금·대손충당금 공시 의무화
양식만 맞으면 확인도 제재도 어려워

대우건설의 올해 3분기 보고서(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이 검토의견을 거절했다. 분기보고서에 대한 의견거절은 연간 사업보고서에 첨부되는 감사의견처럼 상장폐지 등의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대우건설의 재무제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시장의 의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주가는 폭락했고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또 대우조선해양의 분기보고서에도 해당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한정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시장의 의구심은 건설업과 조선업 등 수주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 수주산업에 대한 의심은 지난해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와 그에 따른 회계절벽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안진, 대우조선해양 분식 트라우마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초대형 분식회계는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 앞서 과거 3년치 재무제표를 모조리 뒤집는 정정공시를 했다. 2년 연속 흑자기업이 2015년에 갑자기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산출됐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은 본인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낸 과거 실적의 정정을 요구했고, 2013년과 2014년 각각 4000억원대 흑자는 각각 8000억원 규모의 적자로 돌변했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은 회계조작과 이중장부를 통해 대규모 손실을 숨겨온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고, 안진회계법인 책임자는 이를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회계처리 위반여부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감리도 진행중이다.

그랬던 안진회계법인이 올해부터 대우건설의 외부감사를 맡았고, 3분기 보고서에 의견거절이라는 경고음을 냈다. 대우건설은 대우조선해양에 앞서 1조4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4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확인돼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어, 안진 입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에서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 수주산업 회계기준 개정됐지만

공교롭게도 3분기 보고서 회계법인 검토의견으로 논란이 되는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은 모두 수주산업이다. 건설과 조선업 등 수주산업은 수년간에 걸쳐 수익을 나눠서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3년이 걸리는 100억원짜리 사업을 따냈다면 2년 간 수익이 없다가 3년째에 1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진행 정도에 따라 100억원의 수익을 쪼개서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문제는 사업의 진행률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해마다 수익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수주회사가 판단하는 진행률과 돈을 지불하는 발주처가 판단하는 진행률이 다를 경우 일종의 미수금인 미청구공사금액이 발생해서 수익으로 잡아 놓은 것이 손실로 전환되기도 한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초기에 수익 인식을 과다하게 해 발생한 손실을 막판에 털어버리면서 거액의 회계절벽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당국이 수주산업 회계처리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회계기준을 개정하고 공시를 강화했지만, 수주산업 회계의 분식 위험 제거를 담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감독당국이 만든 양식에만 부합하면 당장 공시위반으로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감독당국 입장에서도 정확한 회계감리와 법률적 강제성을 띤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1년치 사업보고서를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제출된 분기·반기보고서만으로는 판단이 쉽지 않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말 수주산업 216개사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점검한 결과 18.5%인 40개사의 기재사항이 미흡하다고 지적됐지만 모두 자진시정명령을 받는데 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번 점검은 개정사항의 형식적인 기재준수 여부를 점검한 것으로 재무제표 상 회계기준 위배 사항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당국의 규제가 당장 실효적인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다보니 기업들은 재무제표의 내용보다는 규제에 따른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개정된 회계기준은 매출액의 5% 이상인 주요 수주산업 계약은 각 수주건별, 영업부문별로 진행률과 미청구공사, 공사미수금대손충당금 등을 구분해서 공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공시 내용보다는 공시의 형식적인 구분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된 대우건설 3분기 보고서를 보면 매출채권에서 장단기 공사미수금에 대한 대손충당금이 4700억원에 이르지만 매출액 5% 이상(중요계약)인 주요 사업장별 공시에는 공사미수금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적어 넣는 칸만 있고 금액은 적시하지 않았다. 못받을 것 같은 돈이 있긴 있지만 중요계약과 관련된 건 없다는 뜻인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건설이나 GS건설 등 동종업계 모두 비슷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독지침이 올해 처음 실시된 부분도 있고, 회계법인의 분기·반기 검토의견은 제재대상이 아니어서 현재까지 공시된 부분만으로 감리에 착수하거나 제재수위를 결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연말에 사업보고서 주석사항까지 점검한 이후에야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감리와 제재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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