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개 기업이 총 3000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추징당했던 지급보증 수수료 세금문제가 과세당국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긴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1심 법원에서 부실과세가 인정돼 무더기 패소를 당한 국세청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대다수 소송이 소 취하로 마무리 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소 취하가 돼도 당초 과세금액의 80% 가량을 기업에게 환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세청의 실수 때문에 국고로 들어왔던 3000억원 중 2400억원 가까운 세금이 다시 빠져나가게 되는데다 불필요한 소송비용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치른 셈이다. 더구나 일부 기업은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액 환급을 요구하며 재판을 지속하고 있어 추가 환급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
# 국세청 과세모형의 허점…줄 패소
사실 국세청은 지급보증 수수료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상당히 오랜기간 준비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대출을 받을 때 지급보증을 해주고 그 대가로 지급보증 수수료를 받는데, 관례적으로 너무 낮은 수수료를 받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기업들이 지급보증 수수료를 낮게 받는 방식으로 자회사에 부당한 특혜를 주고, 모기업은 소득을 줄여 법인세를 탈루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는 명확한 과세기준이 필요한데 지급보증 수수료는 명확한 지급기준이 없었다. 결국 국세청은 세금탈루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과세 모형을 개발하기로 하고 2008년부터 한국기업데이터 등에 외주용역을 진행해 2011년 지급보증 수수료 정상가격 산정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모기업이 보증을 서기 전과 후의 이자비용을 추정해서 그 차액을 부당이득으로 간주하는 모델이었다. 보다 정확한 산출을 위해 모회사와 자회사의 신용등급까지 매긴 국세청은 이를 바탕으로 2012년 해외 자회사에 지급보증을 서준 대기업들에게 무더기로 세금을 추징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과세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에서 국세청 과세모형의 중대한 허점들이 발견됐다. 국세청의 평가모델은 각 산업별 차이나 각국의 다양한 금융환경을 고려하지 않았고 부분적인 재무정보만으로 만든 일괄적인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와 LG전자, LG화학, 한국전력, 효성, 롯데쇼핑 등 11개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 세금소송의 첫 선고가 있었던 2015년 10월 21일, 각 재판부는 일제히 국세청의 과세모델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은 과세방법'이라며 기업들의 손을 들어줬다.
첫 번째 소송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과세방법에 의한 부실과세였다는 판단이 난 뒤 국세청은 잇따른 소송에서도 줄줄이 패소했다. 3000억원에 이르는 추징 세금을 고스란히 다시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 구원투수로 나선 '무디스 모형'
다급해진 국세청은 기존의 과세모형 대신 보완된 과세모형을 고안한 후 법원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소송에서 패할 것 같으니 중재를 통해 세금 일부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담겼다.
보완된 과세모형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분석틀을 사용했는데 기업별 신용등급을 매겨 수수료를 계산하는 이른바 무디스 모형(무디스 리스칼크 모형)이다.
다행히 무디스 모형을 내세운 국세청의 설득은 통했다. 전국 각급 법원에서 진행된 지급보증 세금 소송 39건 중 34건이 중재를 통해 '소 취하'로 결론이 났다. 소 취하된 34건 중 15건은 1심 행정법원에서 끝났고, 19건은 기업이 승소한 후 국세청의 항소로 고등법원까지 갔지만 조정이 이뤄졌다.
올해 2월 10일 포스코대우와 롯데리아가 제기한 소송에서 종전(원고승)과 달리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난 것도 무디스 모형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안도 국세청의 과세 실패를 덮기에는 역부족이다. 무디스 모형을 적용하더라도 종전 과세금액의 80%안팎을 환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3000억원 중 2400억원 가까운 금액이 환급대상이다.
# 끝나지 않은 분쟁
아직 남은 불씨도 있다. 현재 1심 행정법원에서 진행중인 사건 1건과 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인 5건은 소 취하가 이뤄지지 않고 변론기일이 계속해서 잡히고 있다.
국세청과 법정논쟁을 끝까지 펼쳐서라도 일부가 아닌 전액환급을 받아내겠다는 기업들이다. 효성, 한국전력공사, LG전자, 포스코건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한라비즈테온공조 등이 원고다.
이들 기업의 법률대리인단도 화려하다. 효성과 한국전력공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법무법인 율촌, 포스코건설과 한라비즈테온공조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LG전자는 법무법인 광장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조세소송을 잘 한다고 이름난 대형 로펌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율촌은 지급보증 세금 소송의 70% 이상을 수임하면서 전체적인 소송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대리인으로 참여중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대부분 소취하로 소송이 끝난 상태이지만 고법에 올라가서도 소 취하가 안된 사건들은 기업들이 계속 가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건들"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