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언택트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집마다 골치 아픈 문제가 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작은 소품 하나만 택배로 받더라도 종이박스와 충격방지용 비닐포장 등 제품 부피보다 더 큰 쓰레기가 나옵니다. 이에 최근 유통업계는 이런 포장재의 부피를 줄이거나 재활용이 쉽게 되는 소재로 바꾸는 추세입니다.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고 종이나 자연분해가 가능한 대체 소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비닐과 플라스틱이 포장재로 쓰인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입니다. 그러다 보니 포장재 교체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비용추가를 감수하고 친환경 포장 도입에 나서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이런 기업의 노력을 소비자들도 알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년간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19라는 삶을 지배하는 상황이 되면서 지구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착한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현대百, UN도 알아주는 친환경 정책 도입
이 문제에 앞장서는 기업 중 대표적인 곳이 현대백화점입니다. 현대백화점은 전체 계열사가 '그린 패키지'(Green Package) 프로젝트를 통해 친환경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백화점 6개 계열사는 유엔(UN)으로부터 우수 모델로 선정됐습니다. 지난 5월 유엔이 선정한 '글로벌 친환경 가이드라인(GRP)'에서 현대백화점과 그린푸드는 최우수 등급인 'AAA'를, 현대홈쇼핑·현대리바트·한섬·에버다임은 우수 등급(AA)을 받았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모든 플라스틱 소재 포장지를 종이 소재로 바꿔나가는 '올 페이퍼 패키지'를 도입했습니다. 백화점을 직접 찾은 고객뿐 아니라 온라인몰을 통해 주문한 상품도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도 80여개 선물세트의 플라스틱 고정틀과 완충 패드를 종이 소재로 교체했죠. 이런 활동을 통해 현대백화점은 연간 플라스틱 70t과 스티로폼 50t 사용을 줄인다는 계획입니다.
현대홈쇼핑은 조립만으로 밀봉이 가능한 친환경 배송 박스(핑거박스)를 도입해 접착제 사용을 줄였고, 현대리바트는 가구 포장에 사용되는 스티로폼을 대체할 완충재로 100% 재생 종이(허니콤)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친환경 활동은 포장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대그린푸드는 올해 단체 급식에 약 50억원 규모의 저탄소 인증 농산물을 사용해 온실 감축에 나섰고, 패션 브랜드인 한섬은 사과 껍질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비건(vegan) 가죽'을 적용한 신발을 내놓았습니다.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인 에버다임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는 물질을 최소화하는 '무동력식 압축공기포 소화 설비'를 개발해 우수 인증을 받았습니다.
특이하게도 고객에게도 이런 친환경 활동에 동참하길 권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백화점은 '친환경 VIP'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구매급액과 상관없이 고객이 친환경 활동에 참여하면 엔트리 VIP 등급인 '그린' 혜택을 제공합니다. 집에서 안 쓰는 플라스틱을 가져오거나 수명이 다한 프라이팬, 재판매가 가능한 의류,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과 텀블러 등을 백화점으로 가져오면 '그린' 등급을 받아 12월까지 5%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롯데칠성·CJ대한통운·NS홈쇼핑 등 친환경 포장 도입
현대백화점뿐만 아니라 많은 업체가 최근 들어 친환경 포장을 도입하는 추세입니다. 롯데칠성음료도 그중 하나입니다. 최근 롯데칠성음료의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8.0 에코'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우수 디자인'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제품은 보통 생수와 달리 병에 비닐띠가 없습니다. 수원지, 미네랄 함량 등 표시사항은 병마개에 표기하고 에코 마크 및 브랜드 로고는 용기에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전문 물류업체로서 포장재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CJ대한통운도 친환경 포장재 도입에 나섰습니다. CJ대한통운은 업무 특성상 제품을 박스로 포장할 때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공간을 채워주는 '완충재'를 많이 쓰는 회사입니다. 플라스틱과 비밀을 사용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CJ대한통운은 100% 종이로 만들어진 완충재를 개발해 고객사의 박스포장에 도입했습니다. CJ대한통운의 종이 완충재는 제지업계 1위인 무림페이퍼와 밀봉기술 강소기업인 효원기계와 공동 연구를 통해 완성한 결과입니다. 3사는 종이 완충재에 대해 공동 특허도 출원했습니다.
이런 활동에 동참하는 기업은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환경부와 수원시는 롯데마트, NS홈쇼핑과 '다회용 수송 포장재 사용 시범적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협약에 따라 수원아이파크시티 등 수원시 권선구 지역 일부에서 택배가 다회용 포장재로 배송될 예정입니다. 시범적용 대상지역에서 롯데마트 등 협약 업계의 온라인몰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다회용 포장재에 물건을 담아 배송되고, 추후 포장재는 업체가 회수·세척해 다시 사용하는 것입니다. 협약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이를 통해 연간 일회용 택배 상자 약 13만2860개, 66t의 폐기물을 감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회계 부담 있지만 지속가능 경영 위한 선택"
사실 이런 기업의 친환경에 대한 노력은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기업 초기부터 친환경 포장에 집중한 마켓컬리의 예를 보면 기업 입장에서 도입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켓컬리의 운영사인 컬리는 지난해 42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전년보다 170% 이상 늘어난 성과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업손실을 입었습니다. 판매관리비가 2039억원으로 매출총이익을 앞지르며 9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판관비가 큰 이유 중 하나는 '포장'입니다. 지난해 컬리는 지난해 포장비로만 전년보다 194%나 늘어난 503억원을 썼습니다. 마켓컬리는 모든 배송용 포장재를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쓰는 회사입니다. 포장재의 제작은 물론 고객에게서 회수하는 비용마저도 직접 부담하고 있습니다.
실적에는 나쁜 영향을 주지만 마켓컬리의 친환경에 대한 노력은 큰 성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컷컬리는 친환경 포장을 도입한 지난해 9월 이후 1년 동안 4831t 규모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습니다.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 젤 아이스팩도 100% 워터 아이스팩으로 변경해 1만4248t의 일반 쓰레기도 감소했습니다.
정부와 학계 등에서는 기업의 부담을 소비자가 분담하더라도 친환경 포장에 대한 도입을 늦추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가 올해 발간한 '플라스틱 대한민국'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은 235억개로 한반도 면적 70%를 덮을 양이라고 합니다. 생수 페트병은 49억개로 지구를 10.6바퀴가량 돌 수 있으며, 플라스틱 컵은 33억개로 지구에서 달까지 쌓을 수 있는 양입니다.
이에 우리 정부도 포장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통 포장재 감량 가이드라인'과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시행해 제품 포장 규제를 강화했으며, 연내에 '유통포장재에 대한 포장기준 신설 계획'과 '친환경 포장을 위한 법적 기준 마련 계획'을 수립할 예정입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에 대한 다양한 정책 도입으로 판관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관련 일자리 창출과 기업의 이미지 제고 등은 물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전략을 짜는데 유리한 선택"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