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오늘 유산균 챙겨 드셨나요. 유산균은 최근 몇 년간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제품입니다. '장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산균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2016년 3727억원이었던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8856억원까지 커졌습니다.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도 유산균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팀 선배가 농담 삼아 "막걸리로 유산균을 섭취한다"고 하더군요. 찾아보니 국순당의 '1000억 유산균 막걸리', 생유산균을 내세운 '제주 막걸리' 등 여러 유산균 막걸리 제품이 있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막걸리로 유산균을 섭취할 수 있을지가 말이죠. 막걸리 속 유산균은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풍부한 유산균은 생막걸리의 가장 큰 매력 요소입니다. 증류식 소주나 살균 유통하는 청주·와인 등에선 기대할 수 없는 성분이죠. 보통 생막걸리 1㎖에는 100만개에서 3억개의 유산균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많은 양의 유산균이 들어있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선 막걸리의 제조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막걸리의 주원료는 누룩입니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가진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켜 만든 발효제인데요. 누룩 속의 곰팡이가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젖산균, 유산균 등이 만들어집니다. 참고로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열처리를 하고 균을 모두 죽인 '살균' 막걸리엔 당연히 유산균이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산균이 우리 몸속에서 효과를 내기 위한 조건인데요. 유산균은 장 내 유익균의 양을 늘려 장내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유산균이 장 끝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산균은 위산이나 담즙산에 취약해 장까지 가는 동안 대부분 죽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유산균의 생존을 위해 '4중 코팅기술' 등을 개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럼 막걸리 속 유산균은 어떨까요. 막걸리에 아무리 많은 유산균이 들어있더라도 살아서 장에 도달할 수 없다면 효능이 없는 게 아닐까요?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답변은 모두 "알 수 없다"였는데요.
김순미 가천대 식품생리학과 교수는 "한 회사의 막걸리 제품 하나에도 여러 종류의 수많은 유산균이 존재한다"면서 "이들 중 어떤 유산균이 살아남아 장까지 갈 수 있는지는 막걸리 속 유산균을 분리해서 사람에게 먹게 한 후 대변을 통해 살아있는 상태로 검출되는지 여부를 실험해야만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식품공학과 교수는 "직접 연구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순 없지만 유산균은 위장에 들어가면 위산 때문에 대부분 죽어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며 "하지만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면 막걸리 속 유산균이 한꺼번에 위장으로 들어가면서 일부가 소장까지 살아남을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막걸리는 살아 숨 쉬는 음식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막걸리 속 유산균의 종류와 수도 변하죠. 막걸리를 빚은 후 물을 부어 희석하는 과정이나 유통 과정에서 유산균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산균은 열에 취약해 보관 온도에 따라 품질 차이도 큽니다. 물론 유산균이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장 건강 개선 기능을 갖춘 균주 19종을 고시하고 있죠. 막걸리 속 유산균의 균주는 아직 연구가 좀 더 필요하고요.
즉 막걸리 속 유산균만으로 시중에 판매 중인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을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유산균과는 별개로 막걸리 자체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는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막걸리엔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B, 비타민C 등 여러 영양소가 들어있습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요산 수치를 낮춰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고요.
막걸리 속 '파네졸'과 '스쿠알렌'은 항암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막걸리에서 연구된 항암물질도 살아있는 유산균이 아닌 유산균이 만들어 낸 대사체의 효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죽은' 유산균도 어느 정도 막걸리의 효능에 기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술입니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알싸한 청량감으로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잇따라 이색적인 콜라보레이션 제품들이 나오면서 젊은 층의 막걸리 소비도 늘고 있고요.
그렇지만 술은 술이죠. 막걸리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알코올은 엄연한 발암물질입니다. 또 막걸리는 증류 과정이 없어 숙취가 심한 술이기도 합니다. 다른 술보다 칼로리도 매우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하루에 막걸리 한 사발(250㎖) 정도가 적당하다고 봐요. 즐거운 모임에선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요. 분위기에 취해 막걸리를 들이켜기 전에 한 번쯤은 건강을 떠올려 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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