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비가 내리는 날, 저는 종종 막걸리에 파전을 즐기는 편입니다. 궂은 날씨를 오히려 운치있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준달까요.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5~8도 정도로 낮은 데다 단맛, 신맛, 쓴맛, 떫은 맛이 어우려져 있죠. 한 두잔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어느새 한 병이 사라져있습니다.
막걸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술입니다. 막걸리는 쌀을 술로 빚어 만든 '탁주'입니다. 옛 문헌인 조선주조사에는 막걸리가 대동강 일대에서 빚어지기 시작해 전국으로 전파됐다고 씌여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지역·취향에 따라 막걸리 종류는 수백 가지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막걸리 종류는 하나 둘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실상 주세법은 당시에 금주령이나 다름 없었던 겁니다.
오늘날에도 법은 막걸리 시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선 향료나 색소가 첨가된 막걸리는 탁주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ㅇㅇ맛 막걸리'를 막걸리로 표기하지 못한 사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막걸리'를 막걸리라 부르지 못하고
국순당 '쌀 바나나'와 '쌀 복숭아', 서울장수 '허니버터아몬드주' 등의 막걸리 제품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걸리'라는 단어가 표기돼 있지 않습니다. 향료나 색소가 첨가된 막걸리는 '기타주류'로 분류되기 때문인데요.
주세법에서는 탁주와 기타주류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탁주는 하나 이상의 재료와 물을 원료로 발효해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생산한 술을 말합니다.
기타주류는 발효해 만든 주류에 다른 재료를 첨가한 술인데요. 즉 'OO맛 막걸리'는 원물을 사용한 막걸리에 '향'이나 첨가물을 넣었기 때문에 기타주류로 분류합니다. 탁주가 아닌 만큼 막걸리라는 단어를 제품에 표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원물의 향이 강하면 탁주지만 바나나, 복숭아, 밤 등은 향이 강하지 않아서 원물에서 추출한 향을 넣는다고 합니다. 막걸리에 넣을 만한 재료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럼에도 더 다양한 맛의 막걸리가 시중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탁주와 기타주류의 세율이 달라서입니다. 탁주의 세율은 1ℓ당 44.4원 입니다. 반면 기타주류 세율은 과세표준의 30%입니다. 예를 들어 막걸리 한 병(750㎖)의 출고가가 1000원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탁주인 막걸리의 경우 33원의 세금이 붙습니다. 반면 기타주류로 분류된 막걸리는 246원의 세금이 붙습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일향이 첨가된 막걸리는 통상 일반 막걸리에 비해 비싸게 판매됩니다.
드디어 막걸리로 불린다
최근 막걸리 제조업체들에 희소식이 생겼습니다. 정부가 기존에 향료나 색소를 첨가한 막걸리는 '기타주류'로 분류하던 것을 '탁주'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탁주에 허용 가능한 첨가물을 확대해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생산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개정으로 향료·색소를 추가한 막걸리도 탁주로 분류될 예정입니다.
탁주 세율이 적용되면서 기대되는 점들도 있습니다. OO맛 막걸리 제품의 가격이 낮아질지, 또 얼마나 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날 지 등입니다. 더불어 전통주 이미지를 활용한 마케팅과 홍보가 가능해지면서 막걸리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다만 '막걸리'라는 표기를 단 바나나·복숭아 등의 맛을 가진 막걸리 제품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전망입니다. 막걸리 제조업체들이 이미 생산한 라벨이나 제품이 유통·소진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 술'
막걸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주류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며 국민 술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1965년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법이 제정되면서 막걸리를 쌀 대신 밀가루 등으로 빚기 시작했습니다. 이 탓에 품질도 떨어졌죠. 더불어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면서 막걸리의 입지를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80년대부터는 주류 중 가장 대중적이었던 막걸리는 희석식 소주에 밀렸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막걸리는 고급화, 다양화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수출에도 나섰죠. 그러나 막걸리 생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됐고 이는 막걸리 시장의 성장이 주춤해진 이유가 됐습니다.
이처럼 침체된 막걸리 시장을 키우기 위해 내놓은 것이 다양한 맛의 막걸리입니다. 더불어 과거 동네 양조장에서 빚었던 때와 달리, 최신 설비를 활용하고 위생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적용해 균일한 향과 맛을 내면서 주류시장에서 파이를 키웠습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과일맛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수출이 늘기도 했습니다.
막걸리의 이모저모
막걸리는 쌀과 누룩, 물을 주원료로 합니다. 누룩은 술을 발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 전통 누룩은 '밀누룩'인데요. 이제는 '쌀누룩(입국)'을 쓰는 양조장도 많습니다. 일부 업체들은 밀누룩에서 배양한 개량누룩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소비자 기호에 따라 밀가루를 넣기도 하고 쌀을 넣는 식입니다.
일반 막걸리의 경우 색이 하얄수록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막걸리 색상의 차이는 발효를 위해 넣는 누룩의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본식 누룩인 코지(쌀누룩)를 사용한 막걸리는 흰색에 가깝고, 우리나라 전통 누룩인 밀 누룩을 사용한 막걸리는 볏짚 색을 띱니다. 쌀누룩은 깔끔하고 단순한 맛이, 밀누룩은 깊고 풍부한 맛이 특징입니다.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를 아시나요? 틈새정보로 말씀드리면 원래 동동주는 발효된 술을 청주로 거르지 않고 물을 첨가하지 않은 채 거칠게 거른 술을 말합니다. 이때 밥알이 술 위에 '동동 뜬다'는 의미로 동동주라 칭했습니다.
막걸리는 원래 약주나 청주를 거르고 남은 지게미(찌꺼기)에 물을 섞어 '막 걸렀다'는 의미로 막걸리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생산설비의 발달로 사실상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마케팅 용어로서 구분짓는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막걸리 종류별 주세법부터 관련 상식을 다뤄봤는데요.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막걸리에서 기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부분은 가라앉아 있는 고형분(지게미)과 유산균 등 효모입니다. 막걸리의 지게미에는 고혈압 유발 요소를 억제하는 물질이 함유돼 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10여 종의 아미노산과 단백질,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유기산이 함유돼 있다고 합니다. 또 피부미용에 좋은 비타민 A, B1, B2 등과 피로 회복에 좋은 젖산, 구연산, 사과산 등의 성분도 들어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늘 과음은 몸에 해롭다는 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