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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병은 딱 6잔…'750㎖'에 담긴 수학

  • 2024.10.20(일) 13:00

[생활의 발견]다양한 사이즈 존재하는 와인 병
무역 늘어나 표준화 거치며 750㎖ 대세로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와인 좋아하시나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분위기를 내며 와인을 즐기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 보통 와인을 얼마나 드시나요? 두 명이서 한 병을 마시면 딱 좋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약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가끔은 '혼술'을 하고 싶은데 와인 한 병은 좀 많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어떨 땐 조금 더 큰 와인이, 또는 반 병 정도의 와인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시중에는 캔으로 된 와인도 있고 여러 사이즈의 병 타입 와인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와인은 대부분 '750㎖'입니다. 가장 많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와인 사이즈가 750㎖이기 때문인데요. 와인은 어쩌다 750㎖가 대세가 됐을까요?

187.5㎖에서 30ℓ까지

와인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거쳐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도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와인이 유리병에 담기기 시작한 건 16세기가 지나서입니다.

유리는 역사가 상당히 긴 소재이지만 쉽게 깨지고 가격이 비싸 대중화 되지는 못했는데요. 17세기 들어 석탄로가 발명되면서 잘 깨지지 않는 두꺼운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유리병 시대가 열렸습니다. 초기 와인 유리병의 형태는 목이 짧고 바닥이 두꺼운 형태였는데 점점 목이 길어지면서 1800년대 들어 현대의 와인 병과 비슷해졌다고 하네요.

사진=롯데칠성음료

사실 현재 와인병의 크기는 750㎖의 스탠다드(standard) 사이즈 외에도 상당히 다양합니다. 스탠다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87.5㎖ 용량인 스플릿(split)부터 스탠다드의 40배에 달하는 30ℓ 짜리 멜기세덱(Melchizedek)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병이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건 대용량 사이즈 와인병의 이름들입니다.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4분의 1인 스플릿, 절반(375㎖)인 '하프(half)', 두 배(1.5ℓ )에 해당하는 '매그넘(magnum)'까지는 이름이 꽤 직관적인데요.

이보다 큰 병들은 여로보암(Jeroboam·3ℓ), 르호보암(Rehoboam·4.5ℓ), 살마나자르(Salmanazar·9ℓ),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15ℓ), 멜기세덱 등 다소 낯선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이는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인데요. 이런 관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와인과 기독교의 역사가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도량형 맞추기

와인병의 종류는 이렇게 다양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와인병의 90% 이상은 750㎖ 스탠다드 사이즈입니다. 다른 주류들은 용량이 상당히 다양한 편이지만 와인은 유독 750㎖ 사이즈의 비중이 큽니다.

750㎖ 병이 표준으로 자리매김 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요.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예전부터 와인을 수출하는 물류 선박 적재에 가장 최적화된 단위"라며 "오래 전부터 750㎖로 생산되는 것이 표준이자 관행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와인은 예전부터 국가간, 더 나아가 대륙간 수출입되던 상품이니 병의 크기가 표준화 돼 있어야 실용적이기 때문이라는 거겠죠. 김상곤 롯데칠성음료 와인BM팀 수석은 "패키징 용량, 익숙한 도량형 및 유리 장인의 잔 등이 고루 어우러져 750㎖사이즈가 표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신세계엘앤비

이 중 유리 제작 장인설은 과거에 유리 술잔을 만들 때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예전에는 유리 장인이 직접 입으로 불어 술잔을 만들었는데 한번의 숨으로 한 잔을 불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한 잔의 용량이 125㎖였고, 6잔의 용량을 담아 750㎖의 한 병을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다만 한 잔의 용량을 기준으로 한 병이 만들어진 건지, 병의 용량 때문에 한 잔의 용량이 125㎖가 된 건지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패키징, 도량형과 관련한 설은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와 과거 그 최대 수입국이었던 영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 수석은 "과거 프랑스에서 잉글랜드로 수출하던 보르도 와인 배럴의 용량이 225ℓ였다"며 "이를 300개로 소분해 팔면서 750㎖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건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형이 다른 데서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영국은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합니다. 영국의 1갤런은 4.54609ℓ이니 당연히 두 국가가 무역을 할 때 불편하겠죠. 그래서 50갤런인 225ℓ에 해당하는 와인 배럴을 기준으로 무역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더 편리한 무역을 위해 225개의 1ℓ 병 대신 300개의 750㎖ 병으로 나눴다고 하죠. 이외에도 영국에서 0.2갤론에 해당하는 750㎖로 소분하기 편했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수출 위한 표준

이들 중 어떤 것이 750㎖ 와인을 만들어낸 정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70년대 유럽에서 와인 용량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은 1974년 말 포장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는데요. 와인 등 액체 제품을 포함해 사전 포장 제품 용량을 규정한 지침입니다. EEC 내 여러 회원국간 무역을 위해 제품 용량을 표준화하기 위해서죠.

이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규정은 2007년 9월 유럽 의회에서 폐지됐지만 와인은 예외였습니다. 와인은 현재도 표준 용량이 존재합니다. 일반 스틸 와인의 경우 100㎖, 187㎖, 250㎖, 375㎖, 500㎖, 750㎖, 1000㎖, 1500㎖ 등 8개의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옐로 와인, 발포 포도주 등도 조금씩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표준 용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해외에 판매되는 제품의 경우 다른 사이즈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사진=아이클릭아트

미국의 경우 유럽으로 주류를 판매하기 위해 1979년 미터법을 적용한 표준을 만들었는데요. 유럽 판매가 목표였다보니 유럽의 기준과 상당히 유사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종합하자면 오래 전부터 편리한 생산과 무역을 위해 750㎖에 가까운 용량의 와인이 선호됐고 현재까지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알코올 섭취를 줄이는 움직임이 있다보니 작은 용량의 와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영국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더 이상 EU의 기준을 따를 필요가 없게 됐죠. 그래서 지난해 말 와인에 관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올해부터 영국에서는 200㎖, 500㎖ 사이즈의 와인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가장 흔한 '파인트(568㎖)' 사이즈의 와인도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하네요. '750㎖ 와인'에 영국의 역할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미있는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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