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를 이끈 1세대인 화장품 로드숍들이 지난해 호실적을 내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이 헬스앤뷰티스토어(H&B)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긴 시간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해외 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실적 반전 쓴 2023년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273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4% 성장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14.2% 증가한 114억원을 나타냈다.
토니모리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1511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9.2%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96억원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토니모리가 연간 흑자를 낸 것은 2016년 이후 7년만이다.
잇츠스킨 등을 운영하는 잇츠한불도 지난해 매출액이 1392억원, 영업이익이 81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6.5%, 67.5% 늘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 에뛰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4.7% 늘어난 111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95.5% 성장한 148억원을 기록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 107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5.2% 성장했다. 영업손실(2억원)도 절반 이상 줄였다.
대외 변수에 몸살
화장품 로드숍들은 최근 수년간 성장세가 크게 꺾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K뷰티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 유독 이들 로드숍만 수년째 부진했던 것은 급격하게 변한 국내외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드숍은 자사 브랜드 제품을 가두점에서 판매하는 형태의 화장품 매장을 말한다. 로드숍의 시초는 에이블씨앤씨의 미샤다. 2000년 설립된 미샤는 '3300원 제품'이라는 저가 전략으로 빠르게 화장품 시장에 침투했다. 2003년 더페이스샵, 2004년 스킨푸드 등 비슷한 전략을 취한 로드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9년 LG생활건강이 더페이스샵을 인수하는 등 이 시장은 대기업도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 됐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국내에 대거 들어오면서 이들 로드숍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단체로 화장품 로드숍에 방문해 제품을 싹쓸이 했다. 'K뷰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아시아에서는 국내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치솟았다. 이때 토니모리, 잇츠한불 등 다수의 화장품업체들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세는 금세 멈추고 말았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중국인 단체 관광이 중단됐다. 2019년에는 코로나19로 화장품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했다. 중국 내에서도 저렴한 화장품보다는 럭셔리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여기에 H&B스토어의 등장으로 로드숍은 치명상을 입었다. 올리브영 등 H&B스토어는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를 한 자리에서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자사 브랜드 제품만 판매하는 로드숍보다는 H&B스토어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드숍들의 실적이 추락하는 동안 H&B스토어가 화장품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1위 H&B스토어 올리브영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2조797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이미 전년 연간 수준을 넘어섰다.
해외에서 답 찾다
그랬던 주요 로드숍들이 최근 긍정적인 실적을 낸 것은 국내에서의 체질 개선과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로드숍들은 국내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거점 지역 위주로 축소하는 한편 온라인 위주로 채널을 재편했다.
토니모리의 경우 국내 매장 수는 지난 1월 기준 전국 274개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 지역에 5개 매장을 오픈하는 등 특수상권 중심으로 매장을 재편했다. 네이처리퍼블릭도 비효율 매장을 정리하고 마트, 지하철역 상권 등 접근성이 높은 곳을 위주로 32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킨푸드 역시 오프라인 매장은 17곳까지 줄였으나 온라인 채널에 보다 집중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한 것이 로드숍의 성장을 이끌었다. 해외 시장을 다변화 하고 입점 채널을 늘리면서 볼륨 확대에 주력한 것이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한국 제품 수요가 높은 중국 시장을 주로 공략했다면, 최근에는 미국, 유럽, 중동 등으로도 영토를 확장 중이다. 또 단독 매장 외에도 현지 주요 대형마트, 드럭스토어, 온라인몰 등에 제품을 납품하며 유통 채널을 늘렸다.
실제로 에이블씨엔씨는 해외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지난해 유럽 매출액은 전년 대비 48% 늘었다. 미국과 일본 법인도 각각 12%, 8% 성장했다. 미샤는 글로벌 앰배서더인 헐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을 내세워 해외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한 것이 도움이 됐다. 현재 에이블씨엔씨의 해외 진출국은 총 38개국으로 전체 매출액의 약 55%를 해외에서 내고 있다.
토니모리는 미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대형 유통 채널 '타깃' 1500개 매장에 입점했고, 최근 미국 생활용품점 '미니소'와 상설 할인 매장 '노스트롬 렉'까지 영역을 넓혔다. 스킨푸드는 동남아시아의 왓슨스, 일본의 플라자, 러시아의 레뚜알 등에 주로 입점하고 있다. 해외 진출 국가 수는 44개이며 오프라인 입점 매장 수도 5000개에 달한다.
로드숍들은 올해도 해외 시장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화장품의 가격 경쟁력과 품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더욱 영토를 넓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에이블씨엔씨는 올해 글로벌 마케팅을 통한 해외 시장 성장을 지속해 높은 성장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토니모리는 미국 시장에 보다 집중하는 한편 일본 시장에서의 마케팅도 강화한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달 두바이 관광상권에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중동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스킨푸드는 올해 동남아와 유럽으로 신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