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MZ세대에 집중하는 사이 베이비붐 세대부터 X세대에 이르기까지 기존 핵심 고객층으로 꼽히던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고 있다. 디지털 금융은 물론 심지어 영업점에서도 쩔쩔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은행들은 디지털 금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중장년층도 디지털 금융에 적응하면 더 쉽게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간극을 줄여주는 완충장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하죠?
실제로 중장년층들은 디지털 금융은 물론 영업점 창구에서도 애를 먹는다.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아 영업점 창구를 방문하는데 거기서도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사용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A은행 영업점을 방문한 조숙자(58·가명) 씨. 새로운 적금에 가입하려고 영업점을 찾았는데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은행 업무 안내를 해주던 직원은 사라졌고, 번호표를 받으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지만 메뉴가 복잡해 이조차도 쉽지 않다.
창구에 앉아 적금상품 추천을 받았지만 다시 난관이 찾아왔다. 은행 직원이 모바일뱅킹을 통하면 혜택이 더 많다면서 모바일뱅킹 가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더 편해졌다고는 하는데 전혀 체감이 안된다"면서 "은행 영업점까지 와서 왜 휴대전화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적금 하나 드는데 30분 넘게 은행 직원과 씨름해야 했다"라고 토로했다.
해당 직원은 "고객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드리기 위해 모바일뱅킹을 통한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면서 "그 과정을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지만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에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서울 도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서울 외곽이나 베드타운이 많은 수도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 B은행 영업점을 찾은 이천용(52·가명)씨 역시 조 씨와 비슷한 애로사항을 얘기했다.
이 씨는 "모바일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이 익숙하지 않아 영업점을 찾아 은행원과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럼에도 우리 같은 고객은 점점 더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완충장치가 없다
주요 은행들이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는 건 불가피하지만 완충지대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조씨는 "일부러 짬을 내서 영업점까지 찾아왔는데 왜 상품 가입이 더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최대 고객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바일뱅킹 시장점유율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장 주요 은행들은 모바일뱅킹이나 오픈뱅킹 가입을 KPI(핵심성과지표)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은행들의 모기업인 금융지주들이 모바일뱅킹 월간 이용자 수를 실적 발표 시 주요 성과로 내세울 정도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나서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주문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일례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위해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앱 개발 △고령층 전용 대면거래 상품 지속 출시 △연령별 상품 취급 실적 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안을 내놨다.
하지만 은행들은 디지털 금융 전환이 당장 급하다 보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앱을 내놓긴 했지만 설치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고, 고령층 대면거래 상품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 관계자는 "고령층 대상으로 서비스나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그나마 수요가 많은 연금이나 신탁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면서 "대면 영업 과정에서도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집중도와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