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금융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급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걱정이 대두되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문제가 없지만 PF 취급비중이 높은 저축은행과 보험사, 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 등은 자칫 위기로도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 업권의 현재 상황과 전망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공포가 카드·캐피탈·보험사 등 제2금융권을 엄습하고 있다. 이들 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PF 대출액이 크게 확대된 탓이다. 고위험 상품인 브릿지론(부동산 개발 사업 인·허가 전 단계의 대출)을 중심으로 부동산 PF 대출을 빠르게 확대해 온 캐피탈사들은 몸 사리기에 들어갔다.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금융권이 보유한 부동산 PF 대출액은 2012년말 37조6000억원에서 지난 6월말 112조3000억원으로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이후 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평균 14%의 높은 증가세를 지속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권별로는 보험업권이 전 금융권 중 가장 많은 부동산 PF 대출액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보험사의 부동산 PF 대출액은 43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인 2012년말(4조9000억원) 대비 약 10배 늘어난 것이다.
여신전문회사(카드·캐피탈)의 부동산 PF 대출액도 2012년말 2조8000억원에서 26조7000억원으로 큰 폭 확대됐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권 PF 대출액은 24조5000억원에서 28조3000억원으로 3조80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2011~2013년 부동산 PF 대출 부실 사태로 은행권이 PF 대출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 틈을 2금융권이 파고든 때문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개발수요 증가, 비은행권의 사업다각화 및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대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몸집이 크게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우선 보험사들은 과거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환경에서 주식·채권 등 자산운용 수익률이 감소하자 아파트와 대형사업장을 중심으로 부동산 PF 대출 규모를 빠르게 확대했다. ▷관련기사 : 부동산 PF에 목맨 손보사들…지난해 잔액 26%(6월 17일)
캐피탈사들은 주업이었던 자동차 등의 할부·리스 사업에서 카드사와 경쟁이 심해지고 가계대출 한도 규제로 성장동력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PF 대출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여전사 부동산 PF 대출의 90% 이상인 24조8000억원가량이 캐피탈사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된 수수료율 하락으로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 수익이 줄자 카드사들도 대체 수익원으로 부동산 PF 대출에 뛰어들었다. 여전사들은 고위험에 속하는 주택 및 상업용시설에 주로 대출해줬다.
보험사, 부동산 PF 대출…금융권 최다
문제는 비교적 높은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부동산 PF 대출이 매력적인만큼, 위험한 투자처라는 점이다. 부동산 PF 대출은 아파트나 빌딩 등이 완공되고 분양할 경우 오는 미래 수익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이다. 신용이나 담보를 기준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반 대출과 다르다.
이런 이유로 주택경기가 호황일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동산 경기가 하락해 사업 추진 불확실성이 커지고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면 예상한 투자수익을 거두기는 커녕 자금회수 조차 어려워지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라는 돌발 변수까지 튀어나오면서 단기자금시장 불안이 부동산 PF 대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지난달 22일 내놓은 '9월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올 6월말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 비율의 경우 은행(37.4%→12.9%)과 저축은행(260.7%→79.2%)은 부동산 PF 대출 부실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0년보다 줄었지만 보험사(12.6%→53.6%)와 여전사(카드사 제외, 61.5%→84.4%)는 증가세를 보였다.
올 6월말 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0.50%로 과거 PF 대출 부실사태가 터졌던 2013년말 8.21%에 비해 크게 낮다. 다만 올해 들어 대부분의 업권에서 상승세로 전환한 점이 눈에 띈다. 이 가운데 보험사는 지난해 말 0.07%에서 올 6월 말 0.33%로, 여전사는 0.19%에서 0.84%로 연체율이 올라갔다.
보험사, 과거보다 리스크 노출도 낮아
정부의 잇단 유동성 투입으로 자금시장에서는 '당장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부동산 PF 대출 부실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상황이다.
다만 보험업계는 '대출의 질' 측면에서 보유한 부동산 PF 대출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체 운용자산 대비 부동산 PF 대출금액 비중이 4.7%로 적고, 대부분 선순위여서 부실 리스크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동산 PF는 '채무보증'과 'PF 대출'로 구분된다. 레고랜드 사태와 연관이 깊은 채무보증의 경우 증권사들이 주로 영위해 보험사 비중은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채무보증은 시행사의 신용·유동성 위험을 보증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 [레고랜드 금융대란]⑥'자금경색' 중소형 증권사가 위험하다(10월 28일)
부동산 PF 대출은 다시 본 대출과 브릿지론으로 나뉘는데 보험사들은 시공이 결정된 후 자금을 공여하는 본 대출에 주로 투자했다는 입장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리포트를 통해 "보험사들은 부동산 사태 이후 대출상환 순위가 높은 대출 계약의 비중을 확대해온 만큼, 노출된 위험의 크기는 과거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위험 '브릿지론' 집중한 캐피탈사
뇌관으로 떠오른 건 캐피탈사들이 주로 보유한 브릿지론이다. 후순위 성격인 브릿지론은 시공 전 토지매입, 인허가, 시공사 보증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사업 전에 대출을 내주는 구조인 만큼 본 대출로 연결이 돼야 대출원금과 이자 등 자금회수가 가능해지고, 안되면 그대로 자금이 묶인다.
부동산 경기 냉각기에는 특히 브릿지론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업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공사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분양 부담이 쉽게 낮아지지 않고 있다.
다만 향후 캐피탈사의 부동산 PF 자산 성장세는 축소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1월부터 캐피탈사들에게 담보가치가 브릿지론 규모의 130%를 넘지 못하면 이를 부동산 PF 대출로 분류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캐피탈 사를 포함한 여전사가 총 여신규모의 30% 이내에서 PF 대출과 채무보증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브릿지론 만기시 연장보다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캐피탈업계는 이미 부동산 PF 부실에 대비해 추가 대출에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캐피탈사 한 관계자는 "부동산과 채권시장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이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연내 만기가 도래한 채권들의 상환을 요구하는 등 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