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보험사들의 보험금 증액 실태 현황 파악에 나섰다. 상품출시·판매결정 전결권자와 각 보험사별 위원회 결의 여부도 들여다본다. 당국의 자제령에도 계속되는 보험사 보장한도 증액 경쟁에 제동을 거는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감원 보험담당 부서에 업계 과당경쟁을 막을 근본대책을 주문한 바 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전날 금융감독원은 금융사 자료제출 요구 시스템(CPC)을 통해 각 보험사별 장기보험 인수기준 및 신상품 담보 현황 등을 요청했다. 보험계약 인수 변경 시 담보별 가입 한도와 업계 누적 한도는 물론, 유사담보에 대한 한도까지 세세하게 기재하도록 했다. 상품출시·판매결정 전결권자와 위원회 결의 여부, 잠재 리스크 등 영향평가 시행일도 적어야 한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업계 상시 감시활동의 일환"이라며 "회사별 보장금액을 새로 증액한 건이나 신규담보 건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했다.
보험사들은 해당 내용을 금감원에 일일 보고해야 한다.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일회성 현황 파악이 아니란 얘기다. 보험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통상적인 자료요청과 결이 다르다는 게 대체적인 목소리다. 이번엔 대대적인 규제 시행 전 보험사 압박 강도를 높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업계 보장한도 증액 경쟁에 재차 경고장을 날린 뒤 이어진 자료요청이기 때문이다. '군기 잡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2017년 금감원이 보험상품감독국을 폐지한 뒤 보장금액을 과도하게 부풀린 상품을 원천 차단할 방도가 없어졌다. 여기에 지난해 새 회계제도(IFRS17) 시행 후 보험사들은 새 수익성 지표인 계약서비스마진(CSM) 확보를 위한 단기 실적에 치중하고 있다. 최대 1억원 수준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보장하는 운전자보험, 독감 진단 시 100만원을 보장하는 독감보험, 최대 60만원 보장하는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비 일당 등 무리한 보장을 앞세운 상품이 논란 속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과도한 보장→과열경쟁→금감원 자제령→절판 마케팅'이 계속되자 지난달 이 원장은 보험감독국, 보험리스크관리국, 상품심사판매분석국에 '악순환 고리'를 끊을 근본대책을 주문했다. 특정 보장한도를 과하게 설계하는 등 불합리한 상품개발·판매는 보험사 재정악화나 손해율(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 상승을 유발해 장기적으론 보험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보험료 상승과 같은 보험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금감원은 상품개발 단계에서 보장위험을 넘어서는 과도한 한도를 적정하게 제한하고, 설계사 수수료 부과 기준을 변경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인수기준과 신담보 현황 파악은 이 원장이 주문한 근본대책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쪽에선 당국의 개입이 보험사 상품개발 자율성을 제한해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상품 경쟁력 저하에 더해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