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연말 인사는 다음 해를 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어떤 부문을 강화할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이 단행한 내년도 임원 인사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과 마케팅·영업 부문 인력이 대거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을 친환경차 시대를 여는 원년으로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 인력을 중용했다. 올해 부진했던 내수 판매와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마케팅과 영업 부문에도 힘을 실어줬다. 현대차그룹의 내년 화두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연구개발·영업인력 중용한 까닭은
현대차그룹은 올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수 시장은 점유율 70%를 달성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현대·기아차의 연간 내수 점유율은 지난 2012년 74.6%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올들어 11월까지의 점유율은 69.4%다.
그만큼 내수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을 잠식한 것은 수입차다. 수입차의 올해 판매 대수는 2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점유율로는 올해 1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예전처럼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물론 전년대비로는 증가했다. 지난 11월까지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4.76% 증가한 724만5612대를 기록했다. 외형상으로는 분명 성장했다.
▲ 현대·기아차는 올해 800만대 판매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분명 외형적으로는 계속 성장세다. 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는 수입차에 고전하고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유렵 시장 등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 시장도 주춤한 상태다. 중국 시장에 의존한 외형성장이었다.
실적도 좋지 못했다. 2분기와 3분기에 환율 하락에 따라 '어닝 쇼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수시 인사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CFO를 사장으로 기용했다.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잇따라 터진 연비 과장 문제로 현대차그룹은 홍역을 치렀다. 내년을 친환경차 원년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인사에서 연구개발과 마케팅·영업에 방점을 찍은 이유다.
◇ 친환경차 개발에 전력투구
현대차그룹은 현재 친환경차 개발과 연비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환경차 개발과 연비 개선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친환경차는 글로벌 메이커들이 계속 뛰어들고 있는 시장이다. 조금이라도 뒤쳐질 경우에는 회생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총 189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전체 임원 승진자의 43.6%에 달하는 규모다. 승진자의 절반에 가까운 인력을 연구개발 인력으로 채웠다는 것은 이 분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 이번 현대차그룹 정기 인사를 통해 연구위원으로 선임된 정인수, 박순철, 한동희 연구위원(왼쪽부터). 현대차그룹은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 인사로 친환경차와 파워트레인 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 |
현대차그룹도 "차량 성능 및 품질 개선을 통한 상품 경쟁력 강화와 친환경·차량 IT 등 미래 선도 기술의 확보를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9년부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위원에 선정에도 현대차그룹의 이런 의지가 반영돼 있다.
우선 이번에 연구위원으로 임명된 정인수 연구위원과 한동희 연구위원의 경우 현대·기아차의 파워트레인 개발 전문가다. 정 위원은 소음과 진동 분야, 한 위원은 가솔린 엔진 분야의 권위자다. 박순철 위원의 경우 내구성 향상 기술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현대차그룹이 생산하는 차량의 연비를 현재보다 25% 이상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 총 22개의 친환경차 라인을 운영해 글로벌 친환경차 2위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인사에서 연구개발 부문에 힘을 실어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내실있는 판매확대에 주력
현대차그룹의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마케팅과 영업 부문 인사들의 중용이다. 전체 임원 승진자의 26.8%인 116명이나 된다. 예년보다 마케팅과 영업 인력의 승진이 두드러졌다.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마케팅과 영업 인력을 중용한 것은 그만큼 올해 판매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글로벌 판매 8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는 단지 수치상의 성공일 뿐 내실은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올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대비 4.76%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실적은 저조했다. 많이 팔았지만 실익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마케팅과 영업 인력을 중용한 것은 그만큼 올해 판매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글로벌 판매 8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는 단지 수치상의 성공일 뿐 내실은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올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대비 4.76%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실적은 저조했다. 많이 팔았지만 실익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 현대차는 올해 11월까지 글로벌 판매가 전년대비 4.76% 증가했다. 하지만 수익성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내실있는 판매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마케팅과 영업 인력을 중용한 까닭이다. |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판매와 마케팅 강화를 통해 내년에는 좀 더 내실있는 성장을 하겠다는 의중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몽구 회장도 "800만대 판매 돌파에 안주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800만대는 숫자일 뿐 질적인 성장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판매 증가와 더불어 마케팅을 강화해 수익을 높이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당면과제다. 내년에는 중국과 멕시코에 해외 생산기지 건설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각 시장별로 상황에 맞는 판매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게 된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는 연구개발과 판매·마케팅에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키로 했다"며 "무조건적인 판매 확대가 아니라 수익을 담보한 판매 확대를 하겠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