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작년 배출가스 장치 조작에 이어 이번에는 인증 서류 조작이다. 정부는 폭스바겐에 대해 인증 취소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이렇게되면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퇴출되는 셈이다.
이번 사태는 폭스바겐의 국내 소비자에 대한 기만과 안이한 대응이 겹친 결과다. 작년 배기가스 조작건이 불거졌을 때도 폭스바겐은 성의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번 광범위한 서류 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무슨 일이 일어났나
폭스바겐은 작년 배기가스 장치 조작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미국에서 불거진 배기가스 조작 사실은 전세계로 번졌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정부도 폭스바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형사고발은 물론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난 것이 아니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폭스바겐이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차종의 대부분이 조작된 서류에 의해 인증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업체는 차를 제작한 후 배출가스를 규정 이내 범위에서 배출하는지를 환경부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인증을 받아야한다. 이 인증을 받아야만 시판이 가능하다.
폭스바겐이 조작한 서류는 이 인증 서류다. 배출가스가 기준치를 초과함에도 불구 서류를 조작해 인증을 통과한 후 차량을 판매했다가 들통이 난 셈이다. 서류 조작은 폭스바겐 본사의 지침에 따라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대표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폭스바겐 차량 대부분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조작에 의해 시판됐다는 이야기다.
검찰은 인증 서류 조작에 의해 시판되고 있는 차종과 모델에 대해 환경부에 통보했다. 이를 받은 환경부는 폭스바겐에게 인증 취소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인증이 취소될 경우 폭스바겐 신차는 판매가 금지된다. 기존에 판매된 차량에 대해서는 리콜조치는 물론 과징금이 부과된다.
대상 차종은 2007년 이후 국내에서 판매된 경유차 18종, 휘발유차 14종으로 총 32개 차종 79개 모델이다. 이 중에는 폭스바겐 골프·제타·티구안, 아우디 A3·A4·A6·Q5 등 국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모델들이 대부분 포함돼있다. 대수로는 7만9000대 규모다.
환경부는 오는 22일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인증취소 확정 전에 규정에 따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측에 소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환경부와 협의를 통해 일정 및 참석 인원 규모 등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는 관련 절차를 거쳐 이르면 이달 말에 인증취소와 판매금지 조치를 확정하기로 한 상태다.
◇ 이젠 가래로도 못막는다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대응이다. 작년 배기가스 장치 조작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에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이렇다 할 명확한 대응이나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독일에서는 대대적인 리콜, 미국에서는 소비자 보상 합의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내에서 보여준 것과는 상반된 대응이었다.
이를 두고 업계와 소비자들은 한국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묵묵무답이었다. 작년과 이번 사태로 문제가 된 폭스바겐 차량은 총 20만대가 넘는다. 작년 11월 배출가스 장치 조작이 드러난 12만5000여대에 이번에 서류 조작으로 인증을 통과한 7만9000대를 합한 수치다.
이후 국내 여론이 좋지 않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배기가스 조작에 대해 단 두 줄짜리 설명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지만 2차, 3차 리콜 계획서에도 불법으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고자세와 침묵은 계속됐다.
▲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국내 시장에 대한 안이하고 무성의한 태도는 비난의 대상이 돼왔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이번 인증 서류 조작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일각에서는 검찰과 정부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종의 괘씸죄라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만일 폭스바겐이 애초부터 잘못을 시인하고 각종 조사와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것도 문제지만 이후의 태도에 대해 정부와 검찰이 더 분노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청문회 등 향후 대응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의 태도와 달리 잘못을 시인하고 후속조치에 적극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증 취소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을지라도 더 이상의 브랜드 이미지 추락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독일 본사의 방침에 따라 움직인다. 지금껏 무성의로 일관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본사의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 그런 만큼 본사의 한국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태도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 왜 배짱 부렸나
작년 폭스바겐 사태가 불거졌을 댱시 국내 소비자들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대응에 대해 분노했다. 성의 없는 답변과 부실한 후속대책에 시간 끌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배짱을 부렸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폭스바겐 차량에 대해 리콜을 승인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폭스바겐의 본국인 독일밖에 없다. 미국도 소비자 보상을 합의하면서 리콜에 돌입하는 데에 약 2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발표한 상태다. 독일과 미국에 대한 대처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 달라서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약 6배 가량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미국은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소비자 보상에 합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차라리 보상을 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는 계산을 했다. 현재 유럽에서도 미국식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유럽과 같은 기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폭스바겐의 입장에서는 독일에서 대처했던 식으로 리콜로만 마무리하려는 생각이다.
▲ 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서의 조작을 시인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만일 한국 시장에서 조작한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배출가스 기준이 유럽과 동일한 만큼 유럽식의 리콜 등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아울러 한국 시장에서 전면적인 리콜에 돌입하게 되면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함은 물론 조작을 했다는 점을 시인해야한다. 한국에서 조작을 했다고 시인을 하게되면 소비자 보상에도 들어가야 한다. 또 한국 시장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막기위해 한국 시장에서 최대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한국 소비자들의 안이한 생각도 폭스바겐이 배짱을 키우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에서는 작년 폭스바겐 사태가 불거진 이후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폭스바겐사태가 불거진 이후인 작년 11월 폭스바겐은 국내 시장에서 총 4517대를 판매했다. 전월대비 377%나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판매가 급증한 것은 폭스바겐이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당시 폭스바겐은 최대 1000만원가량 가격 인하 프로모션을 내걸었고 국내 소비자들은 여기에 호응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로망을 제대로 자극했던 결과"라며 "사태의 심각성보다는 나만 좋으면 된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결국에는 폭스바겐이 한국 시장을 함부로 보게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