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부와 조카 사이에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금호석유화학의 판세가 기존 경영진을 이끄는 숙부 박찬구 회장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분쟁 승패를 가를 주주총회를 10여일 앞두고 외국인 주주들의 표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결권 자문기관이 현 경영진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아직 주총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도전장을 내민 조카 박철완 상무 역시 고배당안으로 소액주주들을 포섭하는 동시에 우군을 확보하며 조금씩이나마 세를 불리고 있다.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 이후 더욱 강한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다는 '존재감'은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관련기사☞ ④박철완 쥔 '카드'…금호석화 '격랑 속으로'
◇ 지분 27% 쥔 외국인 '숙부 쪽으로'
금호석유화학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금호석유화학 측이 제시한 주총 안건 전부에 대해 찬성 권고를 내렸다. 금호석유화학은 오는 26일 열릴 주총에 ▲주당 보통주 4200원 우선주 4250원 결산 배당 ▲박종훈 사내이사 선임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을 올려두고 있다.
ISS는 보고서를 통해 "금호석유화학이 제안한 안건이 향후 장기적으로 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이라며 의결권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찬성 투표를 권고했다. 배당안건에 대해서도 총 주주수익률(TSR)과 이익창출 능력이 동종 업계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경영권에 도전하는 박 상무가 올린 안건에 대해 ISS는 '너무 과격하다(too aggressive)'는 표현을 쓰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박 상무는 ▲주당 보통주 1만1000원 우선주 1만1050원 결산 배당 ▲박 상무 본인의 사내이사 선임 ▲이병남 보스턴컨설팅그룹 코리아오피스 대표 등의 사외이사 선임안을 내세웠다.
특히 ISS는 박 상무 측이 소액주주 포섭을 위해 내세운 '회심의 카드'인 고배당안에 대해서도 부정적 판단을 내렸다. 전년 배당(보통주 주당 1500원)의 7배, 기존 경영진의 2배를 넘는 박 상무측 배당안에 대해 "시장 환경이 어려워질 경우 무리한 재무적 부담을 회사에 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ISS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로 전 세계 1700여개 대형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세계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찬반 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투자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글로벌 기관투자가 중 70~80%가 ISS의 보고서에 의존해 주총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금호석유화학 지분의 약 30%를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 대다수가 기존 경영진 손을 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기준 금호석화의 외국인 지분율은 27.35%다. 현재 박 회장 측 우호지분은 14.86%, 박 상무 측은 10% 남짓이다.
◇ 조카, 가족 동원해 세 불리고 있지만…
박 상무 측은 이 같은 ISS 판단에 발끈하고 있다. 박 상무 측은 "ISS는 회사가 졸속으로 내놓은 중장기 성장 전략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며 "허점과 일부 의도적 왜곡, 호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반쪽짜리 권고안"이라며 반발했다.
박 상무 측은 또 "회사가 자신의 주주제안 공개 이후 겉으로는 제안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제로는 리조트 인수 강행, 자사주 소각 회피, 배당 기만 등 주주를 호도하는 내용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며 "금호석유화학이 오너경영 체제를 탈피해 선진적 지배구조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동료 주주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박 상무 측은 고배당 매력을 앞세운 소액주주 표심 확보에 더해 최근 친인척을 백기사로 합류시키며 세도 불리고 있다. 당장은 이번 주총에 의결권을 가지지 못하는 지분이지만 향후 임시주총을 소집하거나 내년 정기주총 때 표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시장도 주시하는 부분이다.
먼저 박 상무 모친인 김형일 여사가 지난 2일 금호석유 주식 2만5875주(55억원 규모)를 매입했다. 박 상무 본인도 9550주(약 20억원)규모를 매수해 지분율을 기존 10%에서 10.12%로 높였다. 이어 박 상무의 장인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도 1만4373주(약 30억원)을 인수하며 사위에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였다. 허 회장은 허만정 GS그룹 창업주의 4남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지분율은 0.04%로 미미하지만 향후 추가 지분 매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8%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의 결정도 이번 주총 승패에 변수다. 국민연금은 주총 2~3일 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개최하는데, 여기서 어느 쪽에 찬성표를 던질지를 가르는 권고안이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 금호석유화학 계열 노동조합은 잇달아 현 경영진인 박찬구 회장 측을 지지에 나서고 있다. 금호미쓰이화학과 금호폴리켐 노조는 16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현 경영진과 노동자들은 함께 회사를 지키고 성장시켜 왔다"며 "박철완 상무의 금호석유화학 장악 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앞서 금호석유화학 3개 노조와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 노조도 박 회장 지지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