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이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에서 현 경영진 손을 들어주면서 치열했던 대결이 한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연기금이 삼촌인 박찬구 회장 상대로 경영권 장악에 나선 조카 박철완 상무의 주주제안 대부분을 반대하고, 금호석화가 상정한 안건을 모두 찬성하면서다. 든든한 큰손을 우군으로 얻은 금호석화는 오는 26일 열리는 주주총회 표 대결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다만 국민연금이 사내이사 1인 추천의 건에 대해선 회사 안건과 함께 박철완 상무가 본인을 사내이사로 추천하는 안건도 찬성한 대목은 여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주총 표 대결 결과로 박 상무가 사내이사에 진입할 경우 분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 국민연금 "금호석화 안건 모두 찬성…다만"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지난 23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를 열어 금호석유 이사회와 최대주주 박철완 상무가 경합을 벌이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이 같은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앞서 금호석화는 이번 주총에서 재무제표와 이익배당, 정관 변경, 사내외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등을 다루기로 했다. 특히 박 상무의 주주제안과 비교해 배당금과 사내외 이사 등의 안건에서 경합을 벌일 전망이었다.
박 상무는 회사 안건(4200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1주당 1만1000원의 배당금을 내세워 주주들의 호응을 이끄는 한편, 자신과 우호 세력을 사내외 이사로 추천하고 이사회를 장악할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금호석화 지분 8.25%를 가진 국민연금의 의결권 방향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기에 회사 측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주총까지 가서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번 결정과 관련 공식적으로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회사 경영 안정과 경영권 견제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실제로 수책위는 박철완 상무도 사내이사로 찬성하는 결정에 대해 "경영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제시됐다"고 설명했다.
◇ 박찬구 회장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국민연금의 '변화'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연기금이 그간 금호석화를 상대로 행사한 의결권 내용과 비교해도 흥미롭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내역이 공개된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금호석화 주총 관련 건을 모두 확인한 결과, 연기금은 두 번만 반대했다. 그런데 두 차례 모두 박찬구 회장을 부정적으로 봤다.
국민연금은 2019년 금호석화 주총에서 박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반대하면서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지적했고, 2016년 주총에서도 박 회장과 김성채 당시 대표이사 재선임 건 관련 "기업가치 훼손 이력과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반대했다.
이런 까닭에 박철완 상무도 "국민연금은 금호석화 경영진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부적절한 의사결정에 대해 기존 이사회가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더욱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한다"면서도 "본인으로 하여금 경영진과 이사회 견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주주제안을 처음으로 찬성 권고한 것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수책위 고위 관계자도 "박 상무의 사내이사 찬성 건은 오너가 아니라 대주주라는 점에서 경영권 견제 차원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고, 박 회장 측에 대해서는 (찬성이라기 보다는) 과거 반대 사유가 해소돼 현재는 반대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제 사실상 표 대결만 남았다. 박 회장과 아들, 딸의 의결권 있는 지분은 14.84%, 박 상무의 경우 10%를 갖고 있다. 박 상무의 모친과 장인이 최근 회사 지분 매입에 나섰으나 이번 주총에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나머지 50.76% 소액주주의 표심이 이제 마지막 승부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