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이 전체 발행주식(보통주)의 18.3%에 달하는 자기주식(559만2528주) 일부를 똑똑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았다. 석유화학 동종 업체인 OCI와 각자의 자사주를 교환하고, 아울러 금호석유화학은 맞교환하는 만큼의 자사주를 소각한다.
이를 통해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한 금호석유화학은 OCI라는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다 OCI와 사업적 제휴를 한층 강화하게 됐다.
금호석유화학 자사주 교환 물량만큼 소각
지난 15일 금호석유화학은 배당, 자사주 취득·소각 등 방식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시했다. 영업으로 번 이익을 주주와 나누고 유통 중인 주식 수를 줄여 주식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주주환원 재원은 향후 2~3년간 별도기준 순이익의 25~35% 수준이다. 한해 4343억원의 순이익을 낸 2020년 기준으로 보면 1086억~1520억원을 주주환원에 쓰겠다는 얘기다.
이번에 추진되는 주주환원 정책은 자사주 교환과 소각이 동시에 진행된다. 우선 금호석유화학은 전날(16일)에 OCI와 서로 자사주를 교환했다. 금호석유화학이 보유 중인 자사주 17만1847주와 OCI가 보유 중인 자사주 29만8900주를 바꿨단 얘기다. 두 회사의 자사주 수는 다르지만, 주식 가치는 315억원으로 같다.
두 회사가 서로 자사주를 교환하는 순간 자사주는 보통주가 된다. 회사 '금고'에 보관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외부에 처분되면 의결권이 살아나서다. 자사주 맞교환을 통해 금호석유화학은 OCI 보통주 29만8900주를, OCI는 금호석유화학 보통주 17만1847주를 각각 보유하게 됐다.
매각하면 의결권 부활 자사주, '백기사' 확보
자사주를 통해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방식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회사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다른 회사에 매각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자사주를 다른 회사에 팔면 의결권이 살아나 보통주가 되고, 이 보통주를 확보한 회사가 백기사로 나서는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 교환에 나선 것은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초 박철완 상무가 박찬구 전 회장을 상대로 '조카의 난'을 벌였지만, 올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박 전 회장이 이기면서 분쟁은 끝났다.
박 상무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자사주 소각 등 주주 친화 정책으로 주주를 설득했는데, 이를 금호석유화학이 외면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남아있는 휴전상태에서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를 외부에 처분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 가운데 금호석유화학은 사업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비상시 우호세력이 돼줄 OCI와 자사주를 교환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OCI와 교환하는 자사주와 동일한 규모의 자사주 17만1847주를 소각키로 했다. 금호석유화학이 보유 중인 자사주 559만2528주 중 17만1847주는 OCI 주식과 바꾸는 동시에 자사주 17만1847주는 태워 없애겠다는 얘기다.
OCI 우호세력 확보, 경영권 분쟁 대비
자사주 교환과 소각을 동시에 진행한 이유는 뭘까. 자사주 소각이라는 주주환원 정책과 우호지분 확보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금호석유화학 입장에선 OCI와 자사주를 교환하게 되면, 그만큼의 물량이 시장에 풀려 오히려 주식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자사주가 보통주로 변해 전체 주식 가치가 떨어진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를 막기 위해 맞교환된 자사주만큼 자사주를 소각한 셈이다.
자사주 맞교환으로 우호 세력인 OCI를 끌어들이면서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비록 1%에 못 미친 지분율(0.56%)이긴 하나 OCI가 금호석유화학의 주주로 참여하게 되면서 경영권 분쟁에 대비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금호석유화학의 대주주 지배력은 여전히 견고하지 못하다. 9월말 기준 박찬구 전 회장의 보유 지분은 6.69%이며, 그의 아들인 박준경 부사장(7.17%)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20명의 지분율은 25% 수준이다. 이 중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박철완 상무 지분율은 8.53%에 달한다.
자사주 교환으로 OCI와 사업적 제휴도 강화했다. 금호석유화학과 OCI는 이달초 에폭시 원료로 쓰이는 에피클로로하이드린(ECH)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바이오와 태양광 발전 등에서 사업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이번 자사주 교환이 '묘수'라고 평가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