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가(家)'의 경영권 분쟁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까지 금호석유화학이 박철완 상무의 배당 확대 요구안에 50원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공세를 폈으나, 법원은 박 상무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박 상무의 주주제안 대부분은 이달 말 열리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게 됐다.
박 상무의 모친 김형일 여사도 이달 초 금호석유 지분 매입에 나서면서 아들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다만 이는 표대결을 벌여야 하는 이번 주주총회에선 활용할 수 없는 카드다. 작년 12월31일까지 보유한 지분만 의결권이 있기 때문이다. 분쟁에서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금호석유는 방어가 다급해졌다. 다양한 유형의 회사 개선 방안을 내놓고 노동조합과의 결속을 다지며 박 상무의 의도가 불순하다며 반격하고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주총 표 대결에서 승부가 사실상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박 상무로서는 이른바 '꽃놀이 패'를 쥔 셈이다. 표 대결에서 지더라도 사내외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거액의 배당금을 손에 쥐고 장기전에 돌입할 채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0원 카드 박철완 '승'(勝)
1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0일 박 상무가 금호석유를 상대로 제기한 주총 의안 상정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박 상무가 제안한 보통주 1주당 1만1000원, 우선주의 경우 1만1050원을 배당한다는 안건이 주총에 상정된다.
앞서 박 상무는 우선주 1주당 1만1100원으로 배당하라고 요구했는데, 금호석유는 이것에 50원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금호석유 정관상 우선주는 액면가 5000원의 1%인 50원을 차등 배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결로 금호석유의 '반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박 상무의 배당금 제안은 주주들이 솔깃할 만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작년만 해도 금호석유 보통주 배당금은 주당 1500원이었기 때문이다. 박 상무가 이번 주총을 통해 경영권 장악을 노리는 만큼 표심을 자극하는 제안을 내놓은 셈이다.
금호석유도 이에 맞서 올해 배당금을 보통주 4200원, 우선주 4250원으로 대폭 상향하는 안건을 내놨다. 그러나 이는 박 상무 제안의 절반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이기에 오는 26일 열리는 주총에서 주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다.
◇ 엄마 카드는 '내년부터 개통되는 카드'
박철완 상무의 모친인 김형일 여사가 지난 2일 금호석유 지분을 대거 매입한 사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박 상무는 최근 김 여사를 특별관계인으로 추가하면서 모친이 금호석유 주식 2만5875주를 주당 21만2912원에 매입한 사실을 공시했다. 55억원 어치다.
이 가운데 4억3100만원은 차입금으로 매수했다. 금호석유 주식 2000주를 담보로 샀다고 공시했으므로 '빚투'(빚내서 투자)로 불리는 신용융자 방식까지 동원한 것이다. 박 상무 자신도 모친과 같은 날에 9550주를 주당 20만8300원 정도에 샀다. 19억8900만원 수준이다.
이로써 박 상무 측의 금호석유 지분율은 기존 10%에서 10.12%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증가한 주식은 실제 주총 표 대결에 전혀 쓸 수가 없다. 이번 주총 의결권은 작년 12월 말일 보유자를 기준으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다소 의아한 시점의 지분 매입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 상무 뒤에 가족이라는 든든한 우호 세력이 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내년 주총까지 대비하는 차원임을 고려하면 얘기가 다르다. 박 상무도 11일 개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지분 매입에 대해 "저와 가족이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박 상무 누나들도 모친을 따라 동생을 지원할지 관심이다. 박 상무의 누나 셋은 각각 대우그룹 고 김우중 회장의 차남, 한국철강 장상돈 회장의 차남,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차남과 결혼했다.
박 상무는 표 대결에서 실패해도 엄청난 규모의 배당금을 받을 전망이다. 금호석유 안건대로 주총이 끝나도 대주주는 주당 4000원을 배당받기 때문이다. 박 상무의 경우 305만6332주를 갖고 있으니 단순 계산으로 122억2532만8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모친 김 여사도 내년에 배당금만 1억350만원을 받는다. 박 상무 가족은 일종의 꽃놀이 패를 쥔 셈이다.
◇ 금호석유의 반격 vs 박 상무의 빠른 역공
박 상무와 금호석유는 배당금 카드만 놓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사내외 이사 교체 명단과 이사회 운영방식 개선 등을 놓고도 경쟁중이다.
금호석유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에 최도성 가천대 석좌교수, 황이석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를 추천하기로 했다. 사내이사는 백종훈 영업본부장(전무)을 내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문하는 판결문을 읽어 유명한 이정미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변호사와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 여성 사외이사도 포함됐다.
이에 맞서는 박철완 상무는 보스턴컨설팅그룹 코리아오피스 대표를 역임한 이병남 씨를 비롯해 민 존 케이(민준기) 덴튼스 리 외국 변호사, 조용범 페이스북 동남아시아 총괄대표, 최종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추천하는 등 사측과 비교하면 글로벌 역량이 강조되는 인사를 공개한 바 있다. 사내이사로는 박 상무 스스로가 이름을 올렸다. 기존 문동준 금호석유 대표이사의 임기가 이달까지이므로 박 상무는 스스로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겠다는 포부까지 드러낸 셈이다.
이에 대해 금호석유 노동조합은 "박 상무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이 박 상무와 친분관계가 있는 자들"이라며 "금호석유화학을 위한 추천인지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조영범 씨는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박 상무와 같은 시기에 밟았고, 이병남 씨의 경우 박 상무의 BCG 근무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다.
박 상무는 이에 반박하며 "사외이사 선정은 전문 업체에 의뢰한 것"이라며 "금호석유가 가야 할 방향은 해외 공장 건설이고, 이와 관련 글로벌 사업과 인수합병(M&A) 관련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가진 전문가를 선정한 것"라고 설명했다.
금호석유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방안과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 등을 신설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사회의 독립성, 투명성 및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박철완 상무는 앞서 자신이 제안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며 새로운 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금호석유는 기존 사업역량을 더욱 끌어올리고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신사업 추진을 통해 2025년 매출액 9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앞서 박 상무도 비슷한 로드맵으로 현재 4조7000억원 수준인 시총을 2025년에 20조원으로 올려놓겠다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박 상무는 기자간담회에서 이사회를 장악하면 금호리조트 인수 추진과 관련 실사부터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금호석유와 3개 노조는 "말도 안되는 주주제안과 사리사욕을 위한 경영권 분쟁"이라며 박 상무의 의도를 지적하고 노조가 임금 협상권을 회사에 위임한다는 등의 자료까지 내면서 연일 결속을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