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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퍼스트무버]LG전자, '의류관리가전' 카테고리를 열다

  • 2021.11.02(화) 15:44

'스타일러' 앞세워 신가전 시장 영역 확대
9년 연구·개발 거친 뒤…10년간 100만대 판매

LG전자는 올 3분기 생활가전사업에서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실적은 연 매출에서 늘 뒤처졌던 미국의 월풀을 크게 앞서고 있다. ▷관련기사: LG전자, 올해 글로벌 가전시장 첫 매출 1위 눈앞(10월29일)

생활가전 실적 호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신(新)가전'이다. 신가전은 세탁기, 냉장고처럼 이젠 생활의 일부가 된 전통적인 필수가전 외에 의류관리기,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와 같이 새로운 생활방식에 따라 생겨난 가전 제품군을 말한다.

신가전은 당초 LG전자가 새로 출시할 가전을 분류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쓰던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가전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후 '집콕'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신가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LG전자 실적에서 신가전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신가전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하고 있다"며 "(H&A사업본부 내) 매출 비중이 2018년 14%에서 올해 17~18%로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연에서 시작한 발명

LG 신가전의 획기적 변화 계기는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의 출시다. 스타일러는 올해 출시 10년 차다. 2011년 첫 출시됐을 당시만 해도 의류 가전 시장의 제품군은 세탁기, 다리미가 전부였다. LG전자는 물빨래를 할 수 없는 의류를 집에서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가전을 만들기 위해 9년여간의 연구·개발을 거쳤다.

스타일러는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의 한 에피소드에서 시작했다. 조 전 부회장이 세탁기연구실장(2001년)을 맡고 있던 시절, 중남미 출장을 갔을 때였다. 옷을 가방에 오래 넣어놔 구김이 심했는데 호텔에 다리미가 없었다.

그때 조 전 부회장의 부인이 "화장실에 뜨거운 물을 틀고 수증기가 꽉 찬 상태에서 옷을 걸어놓으면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 부회장은 그때 옷이 수분을 흡수하고 마르는 과정에서 주름이 펴지는 원리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2011년 2월 출시된 국내 최초의 의류관리기 트롬 스타일러. /사진=LG전자 제공

세탁기·냉장고·에어컨 기술 한 곳에

이후 LG전자는 2002년 스타일러 콘셉트를 기획했고, 2006년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스타일러는 세탁기의 스팀 기술, 냉장고의 온도관리 기술, 에어컨의 기류제어 기술 등 3대 가전의 핵심 기술을 모두 했다.

특히 스팀 기술의 경우 2002년 LG전자가 세탁기에 처음 적용했던 기술이다. 미세한 수증기를 옷감에 입힌 뒤 열풍을 가해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구김을 없애고, 냄새 성분까지 제거하는 원리다. 

이외에도 스타일러만의 기술이 필요했다. 옷에 열을 가하고, 다림질하는 것처럼 주름을 눌러 펴는 힘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발한 것이 '무빙행어'와 '히트펌프' 기술이었다. 

무빙행어는 분당 200회의 지속적인 진동을 가해 옷감 손상과 작동 소음 없이 빠른 시간 내 주름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주부들이 빨래를 널기 전에 한 번씩 털어주는 동작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LG전자 개발자들은 이 솔루션을 찾는 데 무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열을 전달하는 히트펌프 사이클 역시 1년이 넘는 반복 실험을 거쳤다. 테스트에 동원한 옷만 수억원 어치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개발팀은 냄새 제거 실험을 위해 일부러 갈빗집에서 회식한 후 옷을 모아오거나, 흡연자가 많은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연구실에서 몰래 삼겹살을 구웠다는 후문도 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신가전' 카테고리 지속 확대

LG전자가 스타일러를 선보인 이후 시장에서는 경쟁사들의 유사 제품 출시가 이어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의류관리기 시장에서 스타일러가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모델 누적 생산량 100만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작년 기준 국내 의류관리기 시장 규모는 60만대 수준으로 추정된다.

LG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6년 인버터 히트펌프 방식의 'LG 트롬 건조기'를 선보이며 의류관리 가전의 지평을 넓혔다. 나아가 △캡슐형 수제맥주제조기 'LG 홈브루' △인공지능 로봇청소기 'LG 코드제로 R9 보이스' △식물생활가전 'LG 틔운' 등을 출시하며 '신가전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기사: 주말농장 대신할까…'LG 틔운' 살펴보니(10월14일)

향후에는 스타일러의 기술을 활용한 신발 관리기로도 제품군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른바 '슈스타일러'다. 출시 시기는 미정이지만 지난 4월 특허청에 관련 상표 출원을 완료하고 신제품 정보를 공개했다. 스타일러의 핵심 기술이었던 스팀 기술을 앞세워, 신발 종류에 맞게 스팀 분사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 오브제컬렉션 스타일러(왼쪽)와 LG 트롬 스타일러 블랙에디션2(오른쪽). /사진=LG전자 제공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산업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아이폰의 애플이 대표적입니다. 꼭 전에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로 창조하는 기업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을 압도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한국 기업 가운데도 꽤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역경을 딛고 퍼스트 무버로 자리잡거나, 또 이를 향해 나아가는 'K-퍼스트무버' 기업 사례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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