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 선에 바짝 다가서며 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우리 유조선이 처음으로 홍해를 통과하는 등 수급 불안은 해소되는 국면이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호가하던 피크 시점에 계약한 비싼 원유 재고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종전 기대감에도 불구, 실제 주유소 판매 가격 인하로 이어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 유가 하락에도 '역주행'
1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999.82원을 기록하며 2000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특히 서울 평균 가격은 2030원에 달했는데,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가가 폭등했던 2022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국제 유가는 종전 기대감을 반영해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 가격은 여전히 상승세다. 이는 원유 도입부터 유통까지 발생하는 리드타임(조달기간), 즉 시차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가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구매해 국내 주유소에 공급하기까지는 보통 2주에서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악의 고점을 기록했던 보름 전후에 계약된 물량이다. 국제 유가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은 과거의 비싼 가격표를 이제야 받아 들고 있는 셈이다.
기름값 상승세와 별개로 공급망 측면에서는 우회로 개척이라는 의미 있는 신호가 감지됐다. 이날 오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유조선이 홍해 노선을 거쳐 원유 수송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을 대신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 항구 등을 이용하는 대체 경로를 안정적으로 마련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추가 물량을 확보해 오는 6월까지는 국내 수급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물량 부족이라는 급한 불은 껐어도 현장의 주유소 운영자들은 국제 지표 하락을 마냥 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싼 재고 때문이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이미 높은 도매가를 지불하고 받아놓은 기름 재고가 소진되기 전까지는 판매가를 낮출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다. 물류 불안은 해소됐으나 정작 가격 인하를 위해서는 170달러대에 사온 비싼 기름이 다 팔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 리스크가 모두 해소되더라도 저렴한 원유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는 단기간 내 국내 판매가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소비 절벽 현실화… 4차 최고가격 인상 여부 주목
기름값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2000원대에 육박하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시장의 관심은 다음 주 발표될 제4차 석유 최고가격 고시로 쏠린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국민 생활의 안정을 위해 기름값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두는 제도다.
당초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면 가격 억제 효과로 인해 소비가 늘어 수급이 더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실제 지표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7주간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주간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주 동안 감소세를 기록했다. 판매량이 일시적으로 반등한 기간은 3월 1주와 4주차 등 단 2주에 그쳤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르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이 구매 부담을 느끼는 실질적인 소비 절벽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오는 23일 고시될 제4차 석유 최고가격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지난 3차 고시 당시 휴전 기대감 등을 반영해 가격을 동결한 바 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 가능성이 커지며 국제 유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실제 정유사가 사들인 원유 도입 단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 상한선을 인상할지 혹은 민생 안정을 위해 동결 기조를 유지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