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투자 척도다. 그러나 자본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등급 평가 체계와 상품 인증 기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ESG 시대를 맞아 산적한 과제들을 정리하고 그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ESG가 자본시장의 '뉴 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투자자들의 관심 또한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ESG와 관련한 별다른 인증 기준이 없는 탓에 무늬만 ESG인 위장(워싱) 투자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ESG 인증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투자자들에게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투자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국경 없는' ESG 트렌드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식형 ESG 공모펀드의 설정액은 최근 몇 년 새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2834억원에서 2019년 3282억원으로 450억원 가까이 늘었고, 지난해 3108억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올 들어 6500억원을 넘어서며 순식간에 2배 이상 몸집을 불렸다.
펀드 순자산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연초 이후 현재까지 1조원 넘는 뭉칫돈이 추가로 유입되면서 2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2018년 초 20개에 불과했던 관련 상품 수도 올해 5월 말 기준 38개까지 늘었다.
수익률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최근 석 달간 4.11%, 연초 이후로는 9.75%를 기록 중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더욱 빠른 속도로 ESG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따르면 지난해 뮤추얼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글로벌 지속가능 자산에 투자된 자금 규모는 2880억달러(약 321조원)를 웃돈다.
상품 난립에 '워싱' 우려 확산
이처럼 ESG가 핵심 투자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관련 상품 출시가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위장 상품에 대한 경계심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 출시 상품과 비교해 뚜렷한 차별성이 없으면서 단순히 ESG로 포장만 한 상품이 난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지난달 자본시장연구원이 주최한 'ESG와 금융시장: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서는 이와 관련해 트렌드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 패널로 참석한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수석연구원은 "일반 상품과 큰 차이가 없지만 ESG로 포장만 해서 출시되는 금융상품들이 많다"며 "이는 시장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짝퉁 상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투자자들의 상품 선택 시야가 흐려지고 이로 인해 투자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는 가운데 우선 ESG 인증 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진수 수석연구원은 "최근 상황을 고려 시 금융 소비자들이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갖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ESG 상품을 선별할 수 있는 인증 체계를 도입하고 인증 펀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내실 있는 운용을 유도하면 이에 대한 과실이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인증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선 ESG 요소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체계도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장 상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시장 건전성 또한 제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ESG 가치에 대한 시장 거래와 성과 연계 금융 중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