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이 대세다. 투자유치, 수주 등 경영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많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핵심 경영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ESG 경영은 금융투자, 스타트업 육성, 제품 개발 등 실질적인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녹아들고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다양한 ESG 경영활동이 이뤄지는 현장을 발굴해 공유함으로써 ESG경영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ESG 경영은 곧 비용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옳은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ESG 경영이 잘 이뤄진다면 주가가 오르고, 기업의 실적이 나아지는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오더라도 소비자의 신뢰를 받으며 잘 헤쳐나갈 수 있겠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유통 시장에서 ESG 경영은 더욱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지난 11일 만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ESG 경영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각 기업은 사업을 진행하는 시장에 걸맞는 ESG 전략을 도출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ESG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착한 기업'만 살아남는다
서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ESG 경영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주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던 '주주자본주의'를 무너뜨렸다. 이 자리를 고객, 협력사 등의 이익을 모두 챙기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자본주의 4.0)'가 채웠다.
이 과정에서 목표 지향적 전략으로 기업의 고도 성장을 이끌던 1세대 경영인이 하나둘 퇴장했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습득한 2세대 경영인이 대두했다. 이들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스스로 사회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이 경영 주요 담론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은 더욱 빠른 변화를 불러왔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며 경제 시스템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비슷한 시기 행동주의 펀드들은 제3세계 노동력 착취 등 사회적 문제와 지배구조 관련 화두를 던졌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능력이 뛰어나고 배경이 좋아도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면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시대가 됐다. 기업에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ESG 경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은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올바른 기업윤리를 가진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것이며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ESG 경영이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타고 경영 현장에서부터 시작된 만큼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라며 "ESG는 단순히 비용이 아니다. 제대로 실천할 경우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 전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비전부터 바꿔라
서 교수는 어떤 기업이든 원활한 ESG 경영 도입을 위해서는 기업의 '근본'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방식에 ESG 요소를 추가하기보다 기업 내부 사명 및 비전에 ESG 가치가 담겨야 한다는 설명이다. 각 기업이 속해 있는 시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파악하고 알맞은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어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노동조건 등을 둘러싼 논란을 주요 사례로 짚었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 쿠팡 등은 기술 기반의 '테크 기업'이다. 이들의 의사결정 체계는 신속하게 '정답'을 찾는 데 최적화돼 있다. 최대한 효율성을 발휘해야 하는 기술 시장에서 이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은 유통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기술 시장에 비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한 니즈를 표출하고 있어서다. 이를 감안해 때로는 '감성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ESG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사회적 가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의 의사결정 체계와 유통 시장이 중시하는 가치 사이의 충돌이 노동 문제 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하나의 기업이 여러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고유의 의사결정 체계와 시장의 니즈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각 기업은 ESG 요소를 핵심가치, 비전 등에 담고 의사결정 체계를 개선해 시장 특성에 맞는 ESG 전략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제도로 기업 뒷받침해야
그는 ESG 경영의 빠른 정착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생 가능 소재로 제품을 만들고, 여성 임직원 비율을 확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 기업에는 세제혜택 등 가산점을 부여한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오너가 지분을 내놓더라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도입한다. 이와 같은 유인책은 정부만이 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주제 설정과 단계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봤다. 오너의 일방적 지시로 ESG 경영이 도입되면 반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오너·임원·실무자가 토론을 통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부문에서부터 점진적으로 ESG 경영을 도입해야 한다. 도입 범위도 한 사업장으로부터 시작해 전사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 직원이 ESG 경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원활하게 ESG 경영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ESG는 환경 보호를 비롯한 범지구적 주제를 담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설정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한국식 ESG' 등을 표방한다면 향후 세계적 흐름에 뒤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업의 규제 수단으로 ESG를 활용한다면 보여주기식 결과만 낳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서 교수는 "ESG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정부가 ESG를 규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비용 등의 이유로 기업이 반발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정부는 ESG 경영 도입 과정에서 가이드라인 제정, 각 기업에 대한 지원 등 간접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