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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지났는데 '0건'…펀드패스포트는 '개점휴업 중'

  • 2021.09.30(목) 08:30

[금융권 탁상행정]②
펀드패스포트 도입 1년 반
실효성 낮고 니즈도 적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탁상행정'이 금융권에선 지금까지도 비일비재한 모습이다. '펀드패스포트'부터 '중국 ETF 교차상장', '독립금융자문업자'에 이르기까지 일부 금융정책이 실무를 이행해야 하는 현장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당국 주도로 이뤄지면서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편집자]

금융당국이 야심 차게 추진한 아시아 펀드 패스포트(ARFP)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ARFP는 한국과 일본,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 5개 회원국이 국가 간 장벽을 넘어 펀드 상품을 교차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자산운용업계는 기본적으로 수요 자체가 적다는 점에서 펀드 패스포트 제도의 실효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국가 간에 서로 다른 세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다는 점도 펀드 패스포트가 활성화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거론하고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다른 세제'가 걸림돌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ARFP를 통해 5개 회원국 간 펀드의 교차판매가 이뤄진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앞서 올 상반기 회원국인 일본과 호주가 펀드 교차판매 첫발을 떼기 위한 작업에 나섰으나 현재까지 실제 교차판매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이마저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패스포트 펀드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에 펀드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과세 적용 방식, 환율, 수탁회사 선정 등 고려할 사항이 많은데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에서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특히 각국 간 조세체계가 다른 것이 펀드 패스포트 실행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각국 간 세제가 달라 패스포트 펀드 투자자에 대한 원천징수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이 펀드 패스포트를 통해 펀드 교차판매를 실시한다고 가정해 보면 더 이해가 빠르다.

일본에 있는 투자자 A씨가 현지 판매사를 통해 한국 패스포트 펀드를 가입하고 이 펀드로 투자 수익이 났다면 A씨는 일본 세법에 따라 일본 현지에서 세금을 낸 뒤 한국 세법에 따라 한국 과세당국에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 개개인 투자자가 타국인 한국에 세금을 직접 납부하는 것은 쉽지 않아 일본 판매사 측에서 이를 대행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지 판매사들도 타국의 세법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시스템화돼 있지도 않아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국내 운용사들은 원천징수 등 국내외 세제 적용 시스템을 개발해 교차판매 상대국 판매사의 전산 시스템에 내재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외재간접펀드 있는데 굳이 '왜'

국내외 투자자들의 수요가 낮다는 점도 펀드 패스포트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선 이미 해외재간접펀드를 통해 미국·유럽 등 해외 유명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호주, 일본, 뉴질랜드 등의 패스포트 펀드로 갈아탈 유인이 크게 없는 게 사실이다.

금융당국은 펀드 패스포트는 해외 펀드를 국내에서 쉽게 투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아가 국내 펀드를 해외에 쉽게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운용사들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운용업계는 국내 펀드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수요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해외 펀드를 국내 운용사가 재간접으로 운용하는 해외재간접펀드는 많지만 국내 펀드를 해외 운용사가 재간접으로 운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양대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모두 국내 펀드를 해외 운용사에 재간접 형태로 수출한 사례는 없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투자자와 운용사 수요는 없는데 당국 주도로 무턱대고 제도를 도입한 펀드 패스포트는 전형적인 탁상행정 사례"라며 "1년이 넘도록 실제 시행 사례가 0건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펀드 패스포트의 제도적 정비가 완료되더라도 국내 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될지는 미지수"라며 "국내외 투자자들이 주로 해외 증시를 직구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ARFP 펀드는 뚜렷한 유인책 없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국 "회원국 간 논의 이어갈 것"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아시아 펀드 패스포트 회원국 간 세제가 다른 데다 시스템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으로 이들 회원국과 계속 논의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업계를 통해 여러 의견을 청취 중으로, 각국 간 세제가 달라 펀드 교차판매 시행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도 파악하고 있다"며 "다만 이는 우리나라의 세제 시스템 교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각 회원국 간 별도의 제도를 통일시켜야 하는 등의 큰 문제인 만큼 회원국 간에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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