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특례상장 기술평가모델이 내년부터 적용되는 가운데 한국거래소와 산업계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거래소는 다양한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반면 바이오를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들은 오히려 상장 문턱이 까다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주관사 역할을 하는 투자은행(IB)들은 양쪽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다.
기술평가모델 공개...내년 초 시행
최근 한국거래소는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전문평가기관과 학계, 벤처업계, IB 등을 초대해 '혁신기업의 기술평가 및 상장지원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구축한 기술평가 모델이 파일럿 테스트를 마치고 공개되는 자리였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전문 평가기관으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등급을 받거나 상장 주관사의 추천을 받은 기업이 일반상장보다 완화된 재무 요건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기술력이 있더라도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해 투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위해 도입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표준화'다. 현재 특례상장의 중추인 기술평가는 24개의 전문기관이 담당하는데, 평가기준이 기관별로 다르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평가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첩된 평가지표를 제거하고 공통된 지표를 찾아 모델을 재구성했다.
아울러 근래 등장하기 시작한 융복합 업종을 포용할 수 있는 평가지표도 마련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의료기기 사업을 만드는 회사라면 의료기기 산업과 AI 기술을 묶어서 채점하는 식이다.
평가 프로세스도 개선하기로 했다. 평가를 담당하는 기관의 익명을 보장해 독립성을 강화하고 양식을 통일한다. 이에 더해 평가기관의 등급 부여 현황을 공개하고 인력 풀에는 실무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추가하기로 했다. 평가기관에 대한 상벌제도 도입도 개선안에 포함했다.
홍순욱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부이사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특례상장의 큰 축인 기술평가의 새로운 모델 제시를 통해 특례제도의 신뢰도를 높이고 코스닥 시장을 통한 혁신기업의 성장 지원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개선된 평가모델이 가동되는 시점은 내년 초로 추정된다. 거래소가 향후 평가기관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평가기관들은 이를 토대로 수정된 모델을 적용할 예정이다.
"취지 훼손 우려" vs "신뢰성 제고"
그러나 상장을 준비하는 일부 기업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평가모델 구축 과정에서 정작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목소리는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수정된 평가모델이 제도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특례상장 제도 단골손님인 바이오기업들의 불신이 강한 편이다. 바이오업계는 그간 기술평가모델 수정 조치가 오히려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해왔다. 제도가 도입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41개 기업이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시장에 데뷔했는데 이중 92개사가 바이오기업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특례상장은 혁신 기술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도록 하는 제도"라며 "그러나 모델을 규격화하다 보면 임상이 상당수준 진행된 기업들만 들어오게 돼 제도 취지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뀌는 특례상장 기술평가모델은 국내 산업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관리하는 입장의 편의만 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거래소는 기술평가모델 개선은 상장심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모델을 개발할 때 제일 공을 많이 들인 건 (업계의) 의견 수렴 절차"라며 "이 작업만 4~5개월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평가모델 개선은 평가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거래소의 상장심사 기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업계의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주관사 역할을 하는 IB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 조심스럽다"며 "현재는 가안이기 때문에 실제로 제도가 어떻게 시행될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부 임원은 "지난 4년간 별다른 변화없이 시행해온 특례상장 심사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제도 변경으로 증권사 IPO 영업에는 특별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