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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환호 vs 한국은 혹평…'기업 밸류업' 무엇이 달랐나

  • 2024.03.01(금) 08:00

자율적 참여, 인센티브 부여…형식적 내용은 유사
일본은 이사회 독립성 높인 빌드업 이후 정책 발표
한국은 거버넌스 정책없이 발표.. 당국 보완책 시사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정책이 연일 자본시장에서 화두다. 참고로 삼은 일본과 비슷하게 기업의 '자율성'에 방점을 찍고 '인센티브'로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일본의 정책은 한국정부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고, 일본 증시도 사상최고가로 화답했다. 반면 일본을 따라 기업 밸류업을 도입한 한국 정부의 정책은 혹평을 받고 있다.

무엇이 달랐을까. 전문가들은 과거부터 거버넌스(기업 지배구조) 개혁으로 이사회가 일반주주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온 일본과 다르게 한국의 개혁은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한국과 일본 밸류업 방안 무엇이 다른가

정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개최하고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정부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자율적'으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참여하도록 했다. 각 회사의 상황에 맞는 지표를 자율적으로 활용해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도록 할 계획이다. 계획 발표 후에는 잘 이행했는지 알리고, 투자자와의 소통으로 받은 피드백도 알리도록 할 예정이다.

참여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직접적 불이익은 마련하지 않았다. 다만 스튜어드십 코드에 밸류업 참여 여부를 반영해 간접적인 페널티를 만들 계획이다. 이밖에 기업 밸류업 통합홈페이지를 만들어 참여기업을 공표해 미참여 기업을 독려하는 전략을 사용할 방침이다.

한·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비교

이러한 정책은 일본이 지난해 3월 실시한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조치'와 유사하다.

일본도 프라임·스탠다드 시장 상장사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다만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은 자본 비용을 초과하는 수익성을 달성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권유하는 형태를 보였다.

기업가치 개선을 위한 목표를 공시할 때는 회사의 자본비용, 수익성, 시장평가(밸류에이션) 현황을 다양한 지표를 활용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했다. 이후 회사는 이사회가 세운 개선계획을 투자자가 알기 쉽게 공시하고 이행 현황과 투자자의 피드백도 알려야 한다. 

상장사들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불이익은 주지 않았다. 참여기업을 거래소 홈페이지에 게시해 미참여 기업에 수치심을 유발하는 전략만을 활용했다. 프라임 시장 유지 조건에 미달하면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으나, 밸류업 방안에 따르지 않는 기업을 상장폐지하는 등의 불이익은 만들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유사하지만 인센티브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다양하다. 일본은 기업가치를 제고한 우수기업을 'JPX Prime 150' 지수에 편입해 펀드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만들어 자금 유입 혜택을 줄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으나 세제 혜택도 더할 예정이다. 우수기업에는 표창장을 수여하고 각종 세정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빌드업으로 다져온 일본…바로 도입한 한국

지난해 3월 밸류업 지원방안을 시행한 후 일본 증시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하고 고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일본의 밸류업 지원방안을 따라 한 이유기도 하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일본은 오랫동안 거버넌스 개선을 해오면서 기반을 다져놓았고, 이러한 기초를 토대로 밸류업을 시행하면서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은 10년 전 아베 신조 내각부터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해 왔다.▷관련기사:[일본이 돌아왔다]②일본 증시를 바꾼 힘, '거버넌스 개혁'(2월1일)

시장도 개편했다. 4개 시장(시장 제1부·시장 제2부·자스닥·마더스)으로 구성했던 주식시장을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3개의 시장으로 축소 개편했다.

일본 주식시장별 상장 유지 요건

프라임시장은 해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프라임 시장에 속한 기업에서는 △영문 자료를 공시해야 하며 △투자자와 기업이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조직과 인력을 구축해야 한다.

프라임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요건도 까다롭게 설정했다. 기업의 규모와 재무상태뿐 아니라 거래 유동성과 거버넌스도 고려했다.

유동성 부문에서는 △시가총액 250억엔 △주주 수 800명 △유동주식수 2만단원 △시가총액 100억엔 등을 충족해야 한다. '단원'은 1개 의결권을 의미하는 단위다. 주식 100주를 1단원으로 본다.

거버넌스 부문은 유동주식 비율이 35%를 넘도록 정했다. 이는 최대주주가 주주총회 특별 결의에서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별 결의 통과 요건은 3분의 2다.

상장사가 중장기적 경쟁력과 투자자 수익 향상을 목적으로 거버넌스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거버넌스코드)도 요구했다.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법률적 구속력은 없으나 준수하지 않으면 투자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형식이다.

거버넌스코드에서 눈에 띄는 건 독립사외이사다. 프라임시장 상장사는 이사회내 독립 사외이사 비율을 3분의 1 이상 구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만약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있다면 독립 사외이사를 과반수로 선임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또 보상위원회 구성원의 과반수도 독립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요구했다.

애초 일본은 상장규정 중 기업행동규범에서 '일반주주 보호를 위해 독립임원(이사 또는 감사)을 1명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권고가 아닌 준수사항이다. 이를 2021년 거버넌스코드 개정을 통해 보다 강화한 것이다. 독립성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일반주주와 이해상충이 발생할 우려가 없는 자'이며, 이를 상장회사가 판단해야한다. 

일본이 이러한 규정을 만든 것은 2년뒤 발표한 일본판 밸류업 지원방안(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조치)을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아무리 좋은 인센티브로 밸류업 정책 참여를 유도하더라도,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건 결국 이사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규칙을 만들기 앞서 공정한 선수를 뽑도록 사전 빌드업 작업을 한 것이다. 밸류업  핵심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이처럼 일본증시는 기본적으로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기반을 확실하게 다져놓은 후 밸류업을 시행했다.

이와 다르게 국내 증시는 큰 틀의 거버넌스 개편 정책 없이 밸류업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앞서 자사주 마법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제고 방안 등을 마련했으나 근본적으로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도를 높이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밸류업 지원방안만 참고해서는 한계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헤지펀드 헤르메스의 조나단 파인즈 아시아(일본 제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일본의 '부드러운' 접근 방식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지배주주가 거의 없고,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지분 이상의 이익을 얻는 지배주주를 대변하는 이익집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 참석한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밸류업 지원방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이사회가 직접 관여해야 한다"며 "사외이사가 직접 관여해 특정 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법을 개정해 이사가 주주에게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지배주주의 편을 들지 않는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혜섭 남양유업 감사(변호사)는 "일본증시는 단순히 밸류업 지원방안만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10년 전부터 거버넌스 개혁을 해오며 닦아온 기반에 밸류업이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사회가 주주에게 충실하도록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뽑을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 해당 기업 범위를 넓히거나,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늘리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기업가치 제고에 소극적으로 접근해 한계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당국도 밸류업 지원방안의 보완책을 시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기업 경영권 확보에 대한 합리적인 제도 마련을 전제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이익도 고려하도록 개정하는 등 방안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밸류업 미참여 기업에 대한 페널티는 아니지만, 주주환원 관련 지표로 기업을 평가하는 방안도 거래소와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복현 원장은 "특정 지표들을 만들어서 지표에 미달하거나 주주환원이 충분하지 못한 곳에 대해 여러 가지 요구를 고려하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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