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쏘아 올린 미국 증시 상장 '로켓'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쿠팡의 성공적인 미국 증시 데뷔와 대규모 자금 조달의 본격화는 이커머스 업계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후끈 달아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이머커스 업계 판도 변화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의 전략을 짚어보고 막전 막후를 알아봤다. [편집자]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의외의 변수로 떠오른 곳이 SK텔레콤입니다. SK텔레콤은 이베이코리아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3월 16일) 당일 이례적으로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무엇보다 SK텔레콤의 수장이자 SK그룹 내 '인수합병(M&A) 전문가'로 꼽히는 박정호 사장이 인수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오픈마켓 '11번가'를 운영하는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 네이버쇼핑을 제치고 단숨에 시장 점유율 1위로 부상할 수 있는데요. SK텔레콤은 올해 원스토어를 시작으로 ADT캡스, 11번가로 이어지는 '줄상장' 계획을 이미 내놓았습니다. 11번가 상장 준비와 맞물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을 공식화한 경영 행보가 눈길을 끕니다.
◇ 오픈마켓 '11번가' 경쟁력 강화 승부수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커머스 계열사 '11번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SK텔레콤은 주력인 이동통신을 비롯해 이커머스와 미디어, 보안을 4대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커머스 분야에선 올해로 서비스한지 13년된 오픈마켓 11번가와 양방향 TV홈쇼핑 서비스, 이른바 'T커머스' 업체인 SK스토아를 계열사로 각각 거느리고 있습니다.
11번가는 2000년대 후반 국내 오픈마켓 시장을 G마켓과 옥션이 양분하던 시절에 출범했습니다. 2008년 문을 연 11번가는 G마켓과 옥션에 비해 후발주자임에도 공격적인 소비자 마케팅을 펼치며 런칭 3년만에 순방문자수 기준으로 1위에 오르는 등 파죽지세로 성장했습니다.
11번가는 오픈마켓 '강자'인 G마켓과 옥션의 틈바구니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며 '빅3'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출혈적인 경쟁으로 외형 성장에 비해 이렇다 할 실속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11번가의 영업손실 규모는 2017년 무려 15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확대됐습니다. 이듬해 적자폭을 절반 이상으로 대폭 줄인데다 2019년에는 1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모처럼 흑자전환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다시 9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최근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11번가의 매출 규모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11번가의 시장 점유율은 7%로 네이버쇼핑(18%)과 쿠팡(13%), 이베이코리아(12%)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1번가는 매출 성장이 고만고만한데다 3년 전 5000억원의 지분 투자를 계기로 2대 주주(18.2%)로 올라선 나일홀딩스(H&Q코리아·국민연금·새마을금고)에 대한 배당 부담이 큽니다.
SK텔레콤은 투자자인 나일홀딩스를 대상으로 186만여주의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했는데요. 자본 확충을 위해 상환전환우선주를 끌어쓴 대신 매년 약정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지난해만 해도 배당금으로 빠져나간 금액이 50억원에 달합니다. 실적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골골대는 11번가, 이커머스 계열재편 선봉
11번가는 국내 최대 검색포털 네이버를 등에 업은 네이버쇼핑과 로켓배송 등 물류 혁신으로 무장한 쿠팡의 급성장에 밀려 존재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통신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SK텔레콤이 이커머스 사업을 계속 가져가야 할 지에 대해 내부 우려가 많았습니다. 한때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11번가 사업을 정리할 것이란 얘기가 돌 정도였습니다.
2017년 만년 적자였던 11번가의 매각설이 불거졌을 때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직접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 사장은 이커머스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구글과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 글로벌 주요 인터넷 기업들이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 패권을 가져가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요. 또 국내에선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등이 경쟁적으로 온라인 쇼핑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결국 박 사장은 이커머스를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이에 11번가를 중심으로 계열사의 역량을 한데 모았습니다. 11번가를 '한국형 아마존'으로 키우기 위해 2018년 SK플래닛으로부터 11번가를 인적분할로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설립하고 5000억원의 외부 투자자금을 유치했습니다.
◇ 아마존과 사업협력, 박정호 사장 '승부수'
이는 무선통신을 중심으로 성장한 SK텔레콤이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종합 ICT'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건 '탈통신' 전략의 일환입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SK텔레콤은 작년말 글로벌 '유통 공룡' 아마존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존과 협업을 통해 고객들이 11번가에서 해외 상품을 직구(직접구매)로 주문하게 하는 등 쇼핑 차별화를 갖게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이르면 올해부터 가능해질 전망인데요. 이렇게 되면 11번가가 아마존의 인기 상품을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있다 주문을 받아 즉각 배송하는 형태의 서비스가 실현될 전망입니다.
기존 직구의 문제점인 느린 배송이나 복잡한 환불절차, 언어 문제 등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 사장은 SK텔레콤의 탈통신 행보에 가속을 붙이는 것은 물론 비대면 소비 증가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커머스 사업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죠.
◇ 이베이 높은 인수가격, 불분명한 시너지
업계에선 SK텔레콤의 이베이코리아 인수 가능성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 아마존을 끌어들인데 이어 국내 이커머스 3위 업체인 이베이코리아까지 품게 된다면 시장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SK텔레콤의 인수 의지가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도드라집니다. 박정호 사장은 이베이코리아 인수 예비입찰일인 지난 16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인수전 참여 의사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M&A 전문가이자 결정권자인 박 사장이 인수 의사를 직접 언급한 만큼 완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란 분석입니다.
다만 걸림돌이 있습니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해선 최대 5조원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SK텔레콤의 작년말 연결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 규모는 2조원에 못 미치는 1조3697억원인 것을 감안할 때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SK텔레콤은 11번가를 비롯한 각 계열사들의 상장을 통해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는 계획이 있으나 올해 중간지주회사 전환 같은 지배구조 이슈 현안도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입니다.
일각에선 SK텔레콤이 MBK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SK텔레콤측은 "MBK파트너스와 컨소시엄 구성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부인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뚜렷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의 구조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셀러들은 어느 특정 플랫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곳에 동시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셀러가 네이버쇼핑을 비롯해 쿠팡이나 G마켓, 옥션, 11번가 등에 동시에 입점해 있다는 것이죠.
유안타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오픈마켓 플랫폼 통합은 셀러의 출 측면에서 보면 '1+1=1.3(?)' 에 불과할 것"이라며 "소비자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가격을 탐색하고 구매한다는 점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 고객풀 증가 효과 역시 '1+1=1.3(?)'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1번가와 이베이코리아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