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전세 시장 약세 흐름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강남권에 입주 물량이 몰려 있는 데다가 전반적인 전세 시장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전세가율이 40% 수준까지 하락했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매매가격 역시 서초와 송파 등 다른 강남 3구에 비해 회복세가 더딘 모습이다.
전문가들을 내년 상반기까지 강남권에서 대단지 입주가 추가로 이뤄지는 만큼 이런 흐름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강남의 경우 워낙 수요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입주 물량 증가에 따른 영향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입주 물량이 다시 줄어드는 만큼 전세 시장이 안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강남 전셋값 10억원 아래로…전세가율 40%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구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9억7200만원가량으로 지난 2021년 6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1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7월(11억 6900만원)에 비해 2억원 가까이 낮아진 가격이다.
강남 전셋값 하락세는 서울에서도 가파른 수준이다. 올해 3월 3주(20일 기준)까지 서울의 전셋값 변동률은 -9.7%를 기록했는데 강남구의 경우 -12.51%로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서울 내에서 양천구를 제외하면 전셋값 하락률이 가장 높다.
전셋값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급락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강남구 전세가율은 41.6%로 서울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50.9%다.
강남구는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이지만 올해 대규모 단지들의 입주가 몰려 있어 전세 시장이 하락세를 이어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의 하락세는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에서 전세 물량이 쏟아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이 일대 전셋값 하락세가 뚜렷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개포래미안포레스트의 경우 이달 84㎡ 매물은 10억 5000만원(33층)과 12억5000만원(13층)에 각각 전세 거래됐다. 강남구 전셋값이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7월 같은 평형이 최고 15억원(6층)에 팔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2억원 이상 낮아진 셈이다.
인근 래미안블레스티지에서는 84㎡ 매물이 이달 최고 10억원(10층)에 전세 거래된 바 있다. 이 단지의 같은 평형 전세 보증금은 지난해 8월 최고 15억 7500만원에 달했었다.
전셋값 하락세보다는 덜 하지만 강남구의 매매가격 흐름 역시 침체해 있는 모습이다. 최근 서울의 경우 집값 하락세가 둔화하고 있고 특히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가 포함한 동남권의 경우 보합세에 점차 가까워지는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3월 3주(20일 기준)에는 서초구와 송파구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이 보합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강남구는 전주 -0.07%에서 -0.11%로 하락 폭이 되레 커졌다. ▶관련 기사: 보유세 부담 덜었으니 집 살까?…국내외 경기는 '불안'(3월 25일)
"올해까지 약세…내년 상반기 이후 달라질 것"
이런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개포 자이 외에도 강남구에서 대치푸르지오써밋(489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고 인근 서초구에서도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330가구)',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 등의 입주가 계획돼 있다. 내년 초에는 6700가구 규모의 개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입주도 이뤄질 예정이다.
강남권은 서울에서도 전셋값이 가장 높아 이 지역에서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서울 전체 전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18년 말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 입주 당시 서울 동남권 전세 가격이 내려앉기도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내년 초로 예정된 개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입주 물량 등을 고려하면 올해 4분기 정도에 전셋값 약세 흐름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하락세가 오랜 기간 지속하거나 인근 지역 전셋값이나 매매 가격을 눈에 띄게 끌어내릴 정도의 영향이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내년에는 강남의 입주 물량이 다시 크게 줄어드는 만큼 전셋값이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함 랩장은 "2~3년 전에도 강남 4구에 연 1만 가구 이상 입주가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와 내년 강남 입주 물량이 전례 없이 많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최근 강남 개포 인근에 전셋값 하락 등의 영향이 있었던 것처럼 입주가 이뤄지는 일부 지역에 국한해 일시적으로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장 역시 "강남 입주 물량 추이를 보면 내년 상반기쯤 공급이 마무리된다"며 "특히 강남구는 지난해부터 이미 가격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추가적인 하락이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가 지나고 나면 입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전셋값 역시 바닥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