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요즘 우리] 총알→로켓→샛별 배송

  • 2015.12.22(화) 09:24

(삽화 = 김용민 기자)

 

어느 토요일, 새벽 1시40분. 대문 밖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분명 사진 찍는 소리였다. 어느 미친놈이 새벽에 남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파트 현관문 틈으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어둠속에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만 복도를 울렸다. 현관문을 닫으려니, 바닥에 상자 하나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택배 상자였다.

택배 겉면에 주문자로 집사람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자를 뜯어보니 빵과 아보카도 등이 들어있다. 집사람 휴대폰이 반짝였다. ‘01시44분 고객님이 주문한 신선한 상품을 집 앞에 배달했다’는 택배기사의 문자였다. 택배상자가 바닥에 놓인 대문 사진 한 장도 첨부돼있었다. 배달을 완료했다는 일종의 ‘인증샷’이었다.

인터넷에서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마켓컬리’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아침 배달 서비스’였다. 밤 11시 전에 인터넷으로 식품을 주문하면 그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배달해주었다. 회사는 이 서비스를 ‘샛별배송’이라고 불렀다. 샛별은 새벽하늘에 보이는 금성이다.

택배기사는 야간수당을 제대로 받을까, 낮엔 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세상이 너무 빠르고 무섭게 변한다는 생각 반대편엔, 예전부터 신문과 우유는 새벽에 배달됐다는 논리가 맞섰다.  굳이 이런 서비스까지 필요할까라는 생각위로, 야근을 끝낸 뒤 스마트폰으로 아이들 아침거리를 주문하는 워킹맘의 퇴근길이 떠올랐다.

예스24가 당일 배달서비스를 처음 도입했을 때가 2007년이다. 아침에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면 오후에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총알배송’이었다. 7년 뒤 배송서비스는 ‘총알’보다 더 빨라졌다. 지난해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은 ‘로켓배송’을 도입했다. 쿠팡은 일산에서 2시간 이내에 배달을 완료하는 ‘2시간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배송 속도전은 이제 밤낮의 경계까지 허물고 있다.

쇼핑은 갈수록 편해질 것이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다. 하지만 누군가 편해지려면, 다른 누군가는 불편해져야 한다. 편의점의 폭발적인 성장 뒤엔 24시간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점주나 아르바이트가 있다. 아침식사로 편히 배달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새벽에 아침을 배달해서다.

물론 소비자는 서비스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배송전쟁을 벌이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밤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택배기사가 온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지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어쩜 헐값에 그들의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비즈니스워치 안준형 기자입니다. 앞으로 ‘요즘 우리’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일상에 숨어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