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로 유명한 동서가(家)에서 형제집안 간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그간 형제경영을 해왔던 김상헌(67) 동서 고문과 그의 동생 김석수(62) 동서식품 회장이 각각 자녀들에게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다. 현재까진 동서가 경영권 승계 주도권은 김상헌 고문의 장남(김종희 동서 전무)이 쥐고 있다.
김상헌 고문과 그의 부인, 세 자녀의 지분 합은 2010년 44.25%에서 2016년 10월 41.26%로 줄었다. 김석수 회장과 그의 부인, 두 자녀의 지분 합은 2010년 24.03%에서 2016년 10월 25.26%로 소폭 늘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사촌끼리 지분 매입 경쟁
김석수 회장은 이달 20일 동서 40만주를 장남 동욱(27) 씨와 차남 현준(24) 씨에게 절반씩 증여했다. 동서는 국내 커피믹스 시장 1위 기업 동서식품 지분 50%를 보유한 회사다. 지난 20일 종가(2만7350원) 기준 109억원에 이르는 주식으로 증여세만 55억원을 내야 한다. 김 회장의 지분은 20.08%에서 19.68%로 소폭 줄었지만, 두 아들의 지분은 그만큼 높아졌다.
이들은 증여뿐 아니라 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앞서 동욱 씨는 작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동서 7만639주(0.07%)를 22억원에 장내매수했다. 이 기간 현준 씨도 동서 7만283주(0.07%)를 22억원에 사들였다. 지분 변화는 많지 않지만, 잇단 총수가의 지분 변화에 이목이 쏠렸다.
김석수 회장의 형인 김상헌 고문 자녀들도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김상헌 고문의 장남 김종희(40) 전무는 올 5~6월 동서 24만주를, 차녀 은정(38) 씨가 3~6월 5만주를, 막내딸 정민(33) 씨가 올 5~6월 7만주를 각각 사들였다. 여기에 김상헌 고문의 부인인 한예연 씨도 올 5~6월 동서 4만주를 장내매수했다.
작년 1월엔 김상헌 고문이 동서 80만주를 부인과 세 자녀에게 증여했다. 주식 액수만해도 약 180억원에 이르렀다. 이로써 올 10월 기준 김종희 전무의 동서 지분은 10.42%, 은정 씨는 3.46%, 정민 씨는 3.31%로 각각 높아졌다.
▲ 김상헌 동서 고문 |
◇ 형제경영이지만, 중심은 장손
김상헌 고문과 김석수 회장은 그간 형제경영을 해왔다. 형이 모회사인 동서를, 동생이 자회사안 동서식품을 주로 맡는 방식이다.
김상헌 고문은 2004년 동서 대표이사에, 2007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라 동서를 이끌어왔다. 그는 2014년 동서 회장(등기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최대주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석수 회장은 2001년 일년간 동서 대표이사를 잠시 맡은 적이 있지만, 주로 동서식품에서 근무했다. 그는 2002년부터 동서식품 감사를 지냈고, 2008년부터는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형과 달리 동서식품에서 대표를 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형제경영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지분 구도였다. 2000년 이후 형(김상헌 고문)의 동서 지분이 동생(김석수 회장)보다 항상 많았다. 김상헌 고문의 동서 지분은 2010년 36.53%에서 올 10월 20.61%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단일 최대주주를 유지하고 있다. 2010년 이후 김석수 회장의 지분은 19~20%대다.
최근들어 형제의 지분이 비슷해졌다고, 지배구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상헌 고문의 지분이 떨어진 만큼, 그의 장남 김종희 전무의 지분은 6년새 3.46%에서 10.42%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의 두 딸과 부인의 지분도 늘었다. 반면 김석수 회장의 자녀들은 나이가 20대로 어리고, 지분은 여전히 1~2%에 머물러 있어 승계 과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현재 3세 경영승계의 중심엔 김종희 전무가 서 있다. 그는 동서 지분 10.42%를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2014년 동서 전무로 선임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특히 김종희 전무는 지난해 동서식품 기타비상무이사로도 선임되며, 경영 폭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