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역에 위치한 HDC신라면세점 7층 지역상생관. 약 635㎡(192평) 규모의 공간에서 지역 특산품과 중소기업 상품을 판매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바로 아래층 화장품 매장과 사뭇 달랐다. 6층에 있는 화장품브랜드 '후' 앞에는 30여명이 줄지어 구매를 기다리는 등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7층은 기자가 둘러본 30분간 손님 10여명이 오고간 게 전부였다.
매장에서 만난 중국인 웬옝(27·여)씨는 "친구들 부탁으로 한국에 와서 살 화장품 목록을 적어왔다"며 "7층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해 올라왔는데 뭔가를 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지역상생관에는 강원관·충북관·전남관·전북관 등 각 지역 이름을 딴 특산품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행사(벤더)에 맡겨 매장을 운영한다. 돌김, 차(茶), 홍삼 등 전통식품, 한지공예품과 같은 지역특산품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를 찾는 손님은 볼 수 없었다. 매장 한켠에 마련된 주류 코너에는 한국 소주 외 양주가 눈에 띄었다.
HDC신라가 면세점업계 처음으로 지난 3월 야심차게 문을 연 지역상생관이 1년도 안돼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식품명인협회가 운영하는 매장이 6개월만에 철수한데 이어 충북관이 올해를 끝으로 더는 매장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전남관의 경우 대행사가 누적된 영업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이날(30일)까지만 운영한다. 대신 기존에 전남관에 입점해있던 식품업체인 한국씨솔트가 사실상 단독매장처럼 운영키로 했다.
▲ 29일 오후 방문한 서울 용산 HDC신라면세점 7층에 마련된 '지역상생관'(사진 위)엔 지나다니는 손님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매장이 텅 비어있다. 반면 6층(사진 아래) 화장품 코너에는 손님이 줄지어 서있다. |
지역상생관이 어려움에 빠진 건 인건비도 건질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화장품 매장은 3층과 6층에 몰려있고 그나마 7층에 올라오는 손님들은 휴식을 위해 카페에만 몰릴 뿐 매장으로는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다.
지역상생관에서 만난 한 매장직원은 "평일에는 하루 종일 30명 정도가 7층에 들르고 주말에는 100명 정도 온다"며 "그 중에서는 7층에 있는 카페에 들르려고 온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남관의 월평균 매출은 500만원, 충북관은 800만원, 강원관은 1000만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의 인건비와 판촉비,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적자를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예외적으로 전북관은 월평균 4000만원대의 매출을 올려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도청 관계자는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가능성이 보이면 매장을 계속 유지하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이대로 끌고가기에는 부담이 커 운영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 특산품 매장을 운영하는 대행사는 각 지자체에 운영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자체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강원도의 경우 매장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 1억4000만원을 추가 지원했다.
HDC신라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지역상생관은 지난해 7월 HDC신라가 면세점 특허권을 딸 때 민관협력의 상징처럼 내세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면세점이 정식 개장했을 당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뿐 아니라 송하진·이낙연·이시종·최문순 등 도지사들도 참석해 지역상생관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HDC신라 관계자는 "아직은 운영초기라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며 "공익적 취지에서 시작한 만큼 매출이라는 잣대만으로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지는 말아달라"고 말했다.
실제 지역상생관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중에는 적자를 보더라도 면세점 판매공간을 계속 유지해주길 바라는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에 입점했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유통채널을 뚫는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상생관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 상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품 중심의 면세점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면서도 "중소기업과 지속가능한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중기 제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공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점 공간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고객 성향에 맞춰 기능이나 디자인, 상품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 제품을 내놔야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