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빠른 행보가 눈길을 끕니다. 최근 발족한 롯데의 '북방 TF' 이야기입니다. 사실 롯데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기업이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한반도에 불고 있는 훈풍 덕분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있는 요즘, 기업들의 눈에는 북한이 새로운 시장으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의 '북방 TF' 출범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사실 롯데는 오래전부터 북한 시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1995년에는 그룹 내 북방사업추진본부를 설립하고, 북한과 경제협력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제과공장 설립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이후 1997년에는 북한의 ‘조선봉화사’와 함께 초코파이 투자를 추진했고 평양 인근에 초코파이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당시 초코파이 공장 건설 계획이 무산되자 그룹 내부에서는 무척 아쉬워했었다는 후문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때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롯데는 지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개성공단에 초코파이와 칠성사이다 등의 제품들을 공급했습니다. 롯데 초코파이와 칠성사이다는 개성공단에 근무하던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번 롯데의 '북방 TF'는 2기입니다. 1기는 지난 2015년 만들었던 ‘북한연구회’입니다. 당시 16개 계열사의 신사업 전문가 20여 명이 모여 6개월간 북한에 대해 스터디를 했습니다. 북한연구회는 북한의 정치와 경제, 문화 현황과 경제 협력 방안을 다양하게 연구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연구 결과는 자료집으로 정리해 그룹 내에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롯데가 북한에 대해 가져온 관심의 역사입니다. 잘 살펴보면 지금까지는 대부분 '스터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남북의 분위기가 녹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혹은 대비 차원의 스터디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당시 같은 상황에 신사업 전문가들이 모여 닫힌 시장인 북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닫힌 시장이던 북한이 조만간 열릴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신규 수요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내 유통업체들엔 희소식입니다. 특히 국내 유통 1위인 롯데 입장에서 북한의 빗장이 풀린다는 것은 새롭고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롯데는 다양한 계열사들을 통해 충분히 시너지가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방 TF'는 롯데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내놓은 아이템입니다. 일단 TF라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을 내놓고 적극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검토하고 스터디하는 가벼운 성격이란 인식을 심어줍니다.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표현입니다. 북한을 자극해서 득을 볼 일은 없을 테니까요.
TF의 구성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성엽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을 TF장으로, 롯데지주 CSV팀·전략기획팀 임원, 식품·호텔·유통·화학 BU의 임원 및 롯데 미래전략연구소장 등 총 8명으로 구성됩니다. TF구성원들의 면면이 그다지 무겁지 않습니다. 북한시장이 열릴 경우 바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는 성격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이는 모양새입니다.
▲ 롯데가 인수한 블라디보스토크의 호텔. |
이번 TF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롯데가 '북방'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공표한 지역입니다. 롯데는 '북방 TF'의 영역을 북한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연해주,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등 중국의 동북 3성까지 포괄했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에는 롯데의 포석이 숨어있습니다.
롯데가 언급한 지역 중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 롯데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들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호텔을 매입했고,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영농법인 및 토지경작권을 인수했습니다. 중국의 동북 3성에서는 롯데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선양 롯데월드'가 건설 중입니다. 롯데가 '북방 TF'에 이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지역까지 포괄한 것은 이들 사업과 북한을 연계해 시너지를 낼 사업을 찾겠다는 의미입니다.
남북 간 철도가 뚫리고 이것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된다면 주요 거점마다 사업을 벌이고 있는 롯데엔 큰 호재입니다. 마침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발점이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롯데는 물류는 물론 관광과 호텔, 식음료 사업 등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중심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롯데는 중국에서 철수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최근 중국 롯데마트 점포 상당수를 매각하면서 철수가 가시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롯데의 중국시장 철수가 자의가 아니라 타의라는 점입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 중국은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자, 가장 위험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롯데는 그동안 중국 시장에 수조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만큼 애착이 큽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정황상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는 모양새지만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다시 뛰어들겠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선양 롯데월드'가 대표적입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와중에도 롯데는 '선양 롯데월드'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다시 중국시장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합니다. '북방 TF'는 이런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북방 TF' 출범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면서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다양한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마련한 협의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방 TF'가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스터디' 역할만 하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풀이됩니다.
최근 롯데는 중국 대신 동남아시아 시장을 새로운 주력으로 공략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떠오르면서 롯데의 계산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롯데는 과연 북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이 가능성이 있을지, 기존 동남아 시장이 더 나을지를 고민할 겁니다.
'북방 TF'는 그런 고민을 본격화하기 위한 시발점입니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린 롯데.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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