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0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11층.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이 집무실 바로 옆 회의실에 은행연합회장 등 6개 금융협회장을 불러 모았다. 지난달 취임한 윤 원장과 금융협회장 상견례로, 신임 감독원장의 향후 감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윤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협회장들에게 4가지를 당부했다. 가계부채위험 관리, 영업행위 윤리의식 제고, 채용관행 개선, 일자리 창출 등이다. 인사말 후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70분가량 진행된 간담회가 끝난뒤 '4가지 중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원장은 "순서대로 강조했다"고 답했다. 그의 감독 우선순위 맨 꼭대기에 가계부채가 있는 셈이다.
윤 원장은 지난달 취임사에서도 금감원이 가계부채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시스템 건전성과 관련 자금 쏠림 현상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이 가계부채 문제가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가계신용(가계부채+판매신용)은 2013년말 처음으로 1000조원이 넘긴 뒤 올해 1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신용은 1468조원으로 전분기보다 1.2%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이어 10년주기 경제 위기설이 나돌고 있어 가계부채는 더 위태롭게 보이고 있다.
이날 윤 원장은 "가계부채 증가율이 한자릿수로 안정화됐다"면서도 "주택담보대출의 안정화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과 전세대출, 개인사업자대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형 부풀리기 경쟁으로 신용대출, 개인사업자대출의 무분별한 확대가 지속된다면 경제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윤 원장은 가계부채에 대해 대학교수시절부터 국내 경제를 위협할 시한폭탄으로 지목해왔다. 2016년 한 강연장에서 윤 원장은 "지금부터 1년안에 가계부채 때문에 한국경제에 큰 위기가 올 확률이 얼마냐 되느냐?" 청중에게 물어본 뒤 "2~3년 놓고 보면 위험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부채는 늘고 자산 경제는 시들시들해지고 수출은 떨어지고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하면 아주 멀지않은 기간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가계부채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중요한 위기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공교롭게 그가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한 시점에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최흥식·김기식 등 전임 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하면서 운명처럼 금감원장이 됐다. 윤 원장이 2년전 그의 예언이 빗나가도록 가계부채를 관리해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