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한지 50일이 넘어섰다. "공직 경험도, 큰 조직의 장도 해본 적 없다"고 솔직한 취임사를 밝힌 그는 그간 틈틈이 사람을 만나고 조용히 업무를 익히고 있다. 뚜렷한 소신을 가진 그가 천천히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평가가 금감원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50일간 신중했던 그의 행보를 통해 그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그는 시장주의자가 맞다."
윤석헌 원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는 금감원 직원들의 평가다. 그는 학자시절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사 수수료와 배당 등에 개입하려는데 이런 간섭과 규제는 금융사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인"(국회입법조사처보 2015년 기고문)이라 지적했던 시장주의자였다. 그가 금감원장이 됐다고 '친시장주의자'가 '반시장주의자'로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윤 원장은 '금융회사의 금리와 수수료에 개입해선 안되며 결정권은 업계에 있다'고 늘 강조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가 변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윤 원장이 임원회의에서 "은행 금리산정체계 점검 결과 합리적이지 못한 사례가 확인됐다"며 이를 개선해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금감원장이 대출금리 압박 카드를 꺼냈다고 해석했다.
세간의 이런 분석을 접한 윤 원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금리산출 체계를 합리적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을 뿐 금리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소신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기위해 금감원은 점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 21일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결과'를 긴급히 발표했지만 오해는 더 큰 오해를 낳았다. 점검대상인 국민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등 9개 은행은 '조직적으로 대출금리를 조작했다'는 낙인이 찍혔고 금감원이 은행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더 거세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파만파였다.
앞으로 윤 원장은 '시험대'에 오를 수 밖에 없다.
당장 정부는 카드 수수료를 간섭하고 있다. 2012년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3년마다 조정할 수 있도록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됐다. 금융위는 내년 1월을 목표로 카드 수수료율을 개편하는 TF를 운영중인데, 금감원도 이 TF에 들어가 있다.
정부 관심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초 신년사에서 "7월 신용카드 수수료가 추가 인하된다"고 약속했다. 윤 원장이 자신의 소신에 벗어나는 일에 간접적으로 협조해야할 상황이 올 수 있는 셈이다.
보험료 신용카드 결제 문제는 금감원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 현재 보험료는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없게 사실상 막혀있는데 금감원은 작년부터 이 문제 해법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이 문제를 풀기위해 작년 10월 원장 직속 '금융소비자 권익제고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자문위원회는 8차례 열렸지만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신용카드사나 보험사 어느 곳도 수수료를 양보하지 않아서다.
이 논의는 현재 중단된 상태지만 올 하반기 카드 수수료율 재산정시 다시 논의하기로 한 상태다. 시장주의자 윤 원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는 카드수수료 관련 많은 일을 벌이고 있지만 금감원은 비용 절감 등 건전성 문제 외에 뚜렷한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다"며 "윤 원장이 학자시절 강조했던 시장주의적 소신을 앞으로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