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대응법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그러려면 '방콕'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개학도 미뤄지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이 많아졌습니다. 가족이 함께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방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낯선 일상은 우리의 소비 패턴을 확 바꾸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강제 방콕'의 일상과 이에 따른 국내 유통·식품 산업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얼마 전에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우리나라에 사재기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을 단 글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글에는 사진이 여러 장 포함돼 있었는데요. 냉장고 냉동실이 식재료와 음식물들로 빽빽하게 차 있는 사진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본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한 네티즌은 "우리 집 냉동실에는 스무 살 된 아들 녀석 돌떡도 있을 것 같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냉동실에 쟁여둔 음식을 다 먹는 것만으로도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실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평소에는 잘 열지 않았던 냉동실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냉동실에는 가공 냉동식품은 물론 얼려둔 생선이나 고기, 떡, 식재료 등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꺼내서 급한 대로 밥을 차리기도 하고, 아이 간식도 만들어주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냉동실이 '깔끔'해졌습니다. 언젠가는 꺼내 먹어야지 했었는데 드디어 실행에 옮기고 나니 '마음의 빚'을 덜어낸 기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재기가 없었던 진짜 이유가 든든한 냉동실 덕분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는 휴지나 생수 등 생필품이나 식량 사재기가 벌어지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난리'를 피할 수 있었던 걸까요.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정부의 발 빠른 대응입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동선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과도한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매일 브리핑을 열어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졌는지 설명한다"면서 "이것이 불안을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성숙해진 시민의식도 한몫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지난 2004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 위기 당시 생필품 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경험이 불필요한 불안을 줄이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굳이 사재기를 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건데요. 그러면서 한국 유통과 배송의 '힘'이 코로나19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국내 온라인 유통업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택배시장은 확실한 경쟁력을 자랑합니다. 온라인 유통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쿠팡은 코로나19로 인한 공포가 확산하던 지난 1월 말 하루 물동량이 330만개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이후에도 하루에 250~300만 개를 소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켓배송 등으로 쿠팡이 자체적으로만 소화하는 물량만 이 정도라고 하니 어마어마합니다.
국내에는 쿠팡뿐만 아니라 G마켓이나 옥션, 11번가, 티몬, 위메프 등 여러 이커머스 업체들이 있습니다. 이들 배송 물량 중 상당수는 택배업체가 담당하는데요.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한진, 롯데, 우체국 택배 업체들이 배송한 연간 물동량은 27억 9650만 개라고 합니다. 하루에 766만 개의 택배를 처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쿠팡의 자체 배송과 택배업체들의 배송 물량만 단순하게 합쳐도 하루에 배송 가능한 택배가 1000만 개가 거뜬히 넘습니다. 이 정도면 요즘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도 주문 물량이 너무 많아 물류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은 없을 듯한 규모입니다.
최근에 부쩍 온라인 배송 주문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택배가 평소보다 다소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별로 없었고요. 한때 온라인에서 마스크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던 적은 있지만 5부제 시행 이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점포들이 그야말로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시작되고 재택근무까지 하게 되면서 이른바 '언택트 소비'를 하는 경우가 늘었는데요. 그래도 집 앞 편의점에 들르는 일이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출출해져서 간식거리를 사거나 음료수, 맥주 등을 사러 가기에는 편의점이 제격입니다. 이런 편의점 점포가 전국에 4만 5000개가량 있습니다.
급하게 장을 봐야 할 때면 주변 대형 슈퍼마켓에 들르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그간 대형 유통업체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기업형슈퍼마콋(SSM) 매출이 최근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SSM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 늘었는데요.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형마트에 가기를 꺼렸던 이들이 가까운 SSM을 찾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대형마트)가 없으면 잇몸(SSM)으로 버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업체들이 '진화'하기 시작하면서 물류망이 더 탄탄해졌습니다. 대형마트는 기존 점포의 물류센터(PP센터) 등을 통해 온라인 배송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오프라인 점포 내 물류센터에서 출발해 집 앞으로 배송을 해주는 식입니다. 결국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오프라인 점포들이 '온라인 주문 배송망'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편의점의 경우 아직 활성화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배달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데요. 집 앞 편의점조차 가기가 꺼려진다면 온라인으로 배달만 시키면 되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등 배달앱 서비스가 전국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굳이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됐죠. 이제 집 근처 대부분 식당에서 배달앱을 통해 주문과 배달이 가능하다는 광고 문구를 접할 수 있는데요. 골목골목의 식당들도 어떻게 보면 온라인 시장의 한 축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들의 재택근무는 계속 연장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도 점점 길어지면서 답답한 마음은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집안에서 큰 불편 없이 끼니를 해결하고 필요한 물건을 금세 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휴지나 생수 사재기가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는 물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사람답게 사는 데 급급한 상황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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