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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평등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아시나요"

  • 2020.09.08(화) 16:46

그림으로 쉽게 생리대 부착‧교체 가능 '처음생리팬티' 개발
전양숙 유한킴벌리 여성용품 마케팅본부 수석부장 인터뷰

그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가까운 친구들보다 조금 빨리 여자가 됐다. 어느 주말 자고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향했다. 속옷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록 어렸지만 먼저 겪은 언니가 있었기에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았다. 초경이었다.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어머니를 호출했다. 어머니는 새로운 속옷과 생리대를 손에 쥐어주셨다. 그날 저녁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버지는 용돈봉투를, 어머니는 꽃다발을 안겨주시며 말했다. "여자가 된 걸 축하한다".

어머니나 언니가 있다면 초경에도 어렵지 않게 속옷에 생리대를 부착할 수 있다. 내게도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니라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생리대 사용을 어려워하는 여성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발달장애 소녀들이다.

유한킴벌리는 최근 이들을 위한 '처음생리팬티'를 개발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층이 소수에 불과해 이윤이 남지 않을 수 있다. 유한킴벌리는 왜 '처음생리팬티'를 개발하게 됐을까. 생리대 착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건 같은 여자인 나조차도 미처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개발 뒷이야기가 문득 궁금했다.

요즈음 코로나19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유한킴벌리는 전면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아쉽게도 직접 대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양숙 유한킴벌리 여성용품 마케팅본부 수석부장은 ‘처음생리팬티’에 대한 인터뷰 요청에 매우 반가운 기색이었다. 전 수석부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유한킴벌리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양숙 유한킴벌리 여성용품 마케팅본부 수석부장 [사진=유한킴벌리]

생리대 교체도 큰 도전인 발달장애 소녀들

입사 18년차인 전 수석부장은 좋은느낌 브랜드와 패드 제품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국내 유일 생리건강정보 블로그 '우리는 생리하는 중입니다'를 제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처음생리팬티' 개발은 내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처음생리팬티는 좋은느낌의 생리대 착용 및 교체를 위한 교육용 위생팬티다. 생리대를 속옷에 부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팬티에 그려진 그림만 따라하면 쉽게 부착할 수 있다.

앞서 유한킴벌리는 1970년대부터 초경교육, 생리건강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자사 초경교육 사이트 ‘우월해(우리월경해)’에는 생리대 부착 방법을 담은 영상도 있다. 그래서 '처음생리팬티' 개발 소식을 들었을 때 '생리대 부착방법을 알려주는 교육 영상이 있는데 굳이 팬티까지 개발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수석부장은 "지난해 2월 회사 홈페이지에 꽃동네 소재 특수학교 교사가 생리대 제품 판촉 데모킷을 요청해왔다"며 "특수학교에서 데모킷이 필요한 이유를 직접 교사분에게 물어본 것이 고민의 시작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발달장애 아동은 생리대 교체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각 장애별로 생리교육도 달리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내부적으로 생리대 착용을 위한 교재 개발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특수학교에는 각기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모여 있다. 정신적, 지적, 신체적 등 발달 장애가 저마다 다르고 경증, 중증에 따라 인지 능력도 차이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테이프를 떼서 붙이는 것뿐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힘겨울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1년간 보건교사 대상 설문조사인터뷰 통해 발달장애 '이해'

그러나 ‘처음생리팬티’ 개발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다양한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전 수석부장은 디자인 과정을 꼽았다

그는 “타깃을 발달장애 아동으로 좁혀서 제품 개발을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지긴 했지만 실제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며 “유한킴벌리의 오랜 파트너인 ‘보건교사협의회’ 보건교사와 특수학교 보건교사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1년간 수정하고 보완한 끝에 조금씩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생리팬티' 개발에 앞서 발달장애 아동 당사자들이 생리대 착용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부터 알았다. 또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도 교사와 동일한 순서로 생리대 교체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만큼 디자인이 쉬워야 했다. 실습이 연습이 되고 연습이 생활이 되는 과정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 수석부장은 보건교사들과 수차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인터뷰, 간담회 등을 진행하면서 발달장애 아동들에 대해 하나둘씩 이해해나갔다.

▲발달장애 청소녀나 초경을 겪는 아이들에게 '처음생리팬티'를 교재로 생리대 부착 및 교체 방법을 교육한다. [사진=유한킴벌리]

전 수석부장은 "한 번은 속옷 안쪽에 생리대 부착 순서를 숫자 1‧2‧3으로 표시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그런데 발달장애 정도에 따라 숫자를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의견을 듣고 해당 디자인을 제외했다"고 말했다.

마케팅, 디자인, 교육 담당자 4명과 협력 파트너들까지 직‧간접으로 최소 10명 정도가 함께 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더하면 100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인원의 의견을 취합하고 수정하기를 거듭했다. 이에 아이디어 토론을 마치고 제품 개발‧양산을 거쳐 시범학교 교재 활용, 영상 제작에 이르기까지 팬티 하나를 만드는 데 무려 1년 8개월이 걸렸다.

모든 여성의 평등하고 안전한 월경권 위한 결과물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처음 생리를 시작한 아이들, 반복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아이들 모두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방수포 처리를 한 생리용 위생팬티 '처음생리팬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생리팬티’의 세부 디자인을 살펴보면 안쪽에 직관적으로 생리대의 패드 모양 디자인을 넣어 부착방법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장애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전체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경하는 아이들이나 양이 많아서 위생팬티를 사용하는 여성 모두 착용하기 무난한 스타일이다.

전 수석부장은 "장애 소녀의 생리교육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여성용품 전문 회사인 유한킴벌리 다운 해법을 더한 결과물"이라며 "처음생리팬티를 통해 모든 여성이 평등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쿵하고 가슴이 울렸다.

사회초년생 때 어느 날 갑자기 터진 생리가 하의까지 스며들어 주변인에게 지적을 당한 적이 있다.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진짜 여자가 됐다고 축하를 받은 '그날'은 정반대로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발달장애 소녀들은 불편하고 불쾌한 그날을 혼자 이겨내기가 얼마나 두렵고 힘들까.

전 수석부장 말처럼 모든 여성은 평등하게 '안전한 월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안전한 월경’을 위한 유한킴벌리의 다음 고민은 무엇일지 내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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